고 웬 지압은 베트남의 명장이다. 하노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일찍이 게릴라 운동에 투신, 베트남을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군과 싸웠다.
1954년 그가 이끈 공산군은 디엔 비엔 푸에서 프랑스군의 항복을 받고 식민 통치를 종식시켰다. 그 후 세계 최강의 미국과 맞서 20년이 넘는 전투를 벌인 끝에 결국 미국으로 하여금 역사상 유일한 패배를 맛보게 했다.
그러나 승전에도 불구, 전후 베트남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전후 베트남의 국방장관과 부총리를 겸했던 지압은 “전쟁은 쉽다. 평화가 어렵다”는 명언을 남겼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눠 갖는다”는 공산주의 원리를 숭상하는 한 경제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됐다. 더 열심히 일한 만큼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사회 구조 하에서는 누구도 열심히 일하지 않고 아무도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함께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구 소련과 동구권 국가가 시장 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 베트남도 그 뒤를 이었고 이에 발맞춰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공산국가가 자유 시장 체제를 도입하면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지만 정작 자본주의 국가가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는 좀 불분명하다.
최근까지는 세금을 줄여 근로 의욕을 고취하고 규제를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설이 유력했으나 이번 금융 위기를 계기로 이에 대한 회의론이 일고 있다. 부시 행정부 들어 대폭 세금을 내리고 규제를 완화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화근이 돼 빈부격차는 심화되고 월 스트릿은 카지노로 변했다는 비판이 높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부가 시장에 깊이 개입해 물건 가격을 통제하고 자유 경쟁을 막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은 아니다. 70년대 닉슨과 포드, 카터 시절을 회상하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붐과 버스트는 필연적인 사이클이다. 오랜 호황이 계속되면 사람들의 정신 상태가 느슨해져 위험에 대한 감각이 둔화된다. 허황된 비즈니스 구상이 참신한 아이디어인 것처럼 둔갑해 사람들을 유혹하고 그런 회사 주식이 뜨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그를 이용해 쉽게 돈 벌 궁리에 몰두한다.
그렇게 시작된 버블이 절정에 이르다 어느 순간 터지면 한 동안 탐욕에 눈이 멀었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공포의 노예가 되고 그것이 불경기를 불러온다. 불경기가 깊어지면 정부는 돈줄을 풀어 경기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이렇게 풀린 돈은 결국 나중에 투기 재발의 요인이 된다. 1920년대의 호황은 1910년대 말 경기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푼 돈에 힘입은 바 크다. 이것이 결국 대공황의 원인인 자산 버블의 원료가 됐다. 2000년대 초부터 불기 시작한 미국 부동산 붐도 2000년 하이텍 주식이 몰락하면서 경기가 추락하자 역시 FRB가 푼 돈줄 덕분이다. FRB는 장기간 연방 기금 금리를 사상 최저인 1%선으로 유지함으로써 부동산 버블을 부추겼다.
이번 대선에 출마한 두 후보의 경제 정책을 비교해 보면 버락 오바마는 부유층에 대한 중과세와 보호무역을, 존 매케인은 감세와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있다. 정책의 기본 틀은 매케인이 옳지만 누가 되어도 당분간 경제가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수 년 간 부푼 버블의 규모가 너무나 커 그 후유증이 가라앉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미국 경제를 살린 장본인으로 추앙 받고 있는 레이건도 처음 수년은 불경기로 고생했고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3선에 성공하고도 대공황 후유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다 태평양전쟁 발발로 경제 살리기에 성공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지도자를 바꾸면 경기가 금방 살아나리란 환상은 버리는 것이 좋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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