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사례. 몇 년 전의 일이다. 멤버십이 필요한 대형 할인점에 들어가고 있는데 문 앞에 있던 미국인 직원이 멤버십 카드를 보여달라는 게 아닌가. 순간, 기분 나쁜 느낌이 올라왔지만 ‘어디 보려면 봐라’는 표정으로 카드를 쓱 보여주고 들어갔다. 그 날 나는, 친구에게 내가 당한 일이 ‘인종차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할 수 없지만)백인들이 들어갈 때는 요구하지 않았는데 나에게만 요구했다며.
두 번째 사례. 한 백인이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 한인교회의 결혼식 하객으로 참석했다. 99%가 한인인 곳에서 미국식 결혼식을 보고 나오는 길에 그는 몇몇 한인들이 흘끔거리며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머, 여기 미국 사람이 왜 왔지?’ 그 말을 들은 백인은 서둘러 교회를 떠났다.
미국은 이 땅을 개척하고 이 땅에서 기회를 찾아낸 이민자들의 국가이다. 물론 먼저 찾아내어 먼저 기반을 다지며 역사를 일궈온 사람들이 있지만, 어쨌든 모두 뿌리를 다른 곳에 두고 온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래서 미국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서 ‘기회의 땅’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기회의 땅에 있는 다양한 기회를 잡기 위해 사람들은 찾아왔다.
하지만 흑인들이 아메리카 땅을 밟은 이유는 달랐다. 새로운 삶을 ‘노예’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389년 만에, 반쪽은 흑인의 피가 흐르는 유색인종이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백인이 아닌 미국 대통령-여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라던 일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경제·정치의 변화보다도 인종의 벽이 허물어지는 사회적인 변화에 더 큰 기대를 걸게 만들고 있다. 언제나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믿는 유색인종들에게 어떤 변화를 기대하게 한다.
사실 첫 번째 사례는 말 그대로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유색인종들은 불이익을 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당하면 그 근거로 ‘인종차별’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백인이었으면, 내가 미국 사람이었으면 저들이 그랬을까? 물론 ‘차별’로 인한 사건이 역사적으로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일상생활의 모든 일에 ‘차별’을 결부시키는 것은 좀 지나치다.
같은 색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색깔이 다르다보니 다른 이유가 더해지는 경우인 것이다. 내가 ‘인종차별’이라는 눈으로 안보면, 정말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 허다하다.
처음 사례 이후, 그 대형 할인점을 갈 때 자세히 눈여겨봤다. 내심 유색인종에게만 멤버십카드를 요구할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그것이 입증되기를 바랐지만, 결과는 아니었다.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검건 하얗건 다 요구하고 있었다.
두 번째 사례의 미국 사람은 오히려 역차별을 당한 사람이다. 워낙 미국이‘인종차별’이슈에 민감하다 보니, 모든 유색인종은 ‘차별’에 민감한 것이 사실이다. 절친한 미국인은 이러한 환경에 대해 그 반대급부로 오히려 백인들이 ‘차별’을 당한다고 말한다.
한인들뿐이었던 장소에서 그 백인은 무척이나 당황했다. 못 올 곳에 왔다는 생각, 한인이 아니기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러니 반드시 유색인종만 억울하다는 생각은 다 맞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은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생각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르고 피부 색깔도 다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주는 의미는 “역시나, 미국은 기회의 땅”이라는 사실이다. 그 기회를 잡고 누리는 것은 준비된 사람들의 몫이다. “이제는 색깔 때문에 불이익 당할 일은 없으리라”는 기대를 하기 전에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내 눈에 씌어진 ‘색깔’이라는 강박도 먼저 벗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변화를 누릴 준비가 필요하니 말이다.
유정민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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