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드레이크-보물바쳐 귀족으로 상승
중 칭시-공포로 군림하다 사면 받아
소말리아 해적-초대형 유조선 빼앗아
소말리아 해적들의 ‘몸값 벌이’를 위한 납치행각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시사주간 타임이 인류역사상 가장 대담한 10건의 해적 행위를 선정했다.
이번주 타임에 따르면 기원 전에 이미 시칠리아 섬에는 지중해 동부를 공포에 떨게 했던 해적이 존재했다. 이 해적들은 BC 75년 25세의 로마 귀족을 납치했다. 그는 로마 공화정의 대정치가 줄리어스 시저였다. 시저는 몸값을 주고 풀려난 뒤 로마군단을 이끌고 이 해적들을 모두 소탕, 하나하나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했다.
프랜시스 드레이크경은 엘리자베스 1세 영국 여왕의 총애를 받는 ‘해적’이었다. 스페인의 배들로부터 각종 금은보화를 노략질해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군주에게 갖다 바쳤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대양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스페인의 카디즈항을 1584년 기습, 수많은 무적함대의 군함들을 파괴하기도 했다.
19세기 중국의 유명한 해적 칭이쑤가 죽고 난 뒤 그의 아내 칭시는 남편의 배들을 이어받아 남중국해를 누비며 해적질을 일삼았다. 그녀의 ‘붉은 함대’는 이 일대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언제 은퇴할지를 제대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여성 해적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청나라 정부는 사면을 제안했고 칭시는 이를 수락, 막대한 재산을 갖고 은퇴를 한다. 뿐만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휘하에 데리고 있던 해적들을 모두 사면해 줄 것을 건의해 이를 성사시켰다.
1523년 프랑스의 해적 장 플뢰리는 스페인이 남미 대륙에서 약탈해 유럽으로 싣고 가던 각종 금은보화를 실은 선박 3척을 포르투갈 연안에서 납치했다. 그때부터 스페인은 바다에 대한 감시를 한층 강화하기 시작했다.
바르바로사(붉은 턱수염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오스만제국 해적은 이탈리아 나폴리만의 진주 카프리섬을 통째로 1535년 점령했다. 그가 지은 성은 지금까지도 이 섬에 남아 있다.
타임은 이어 10번째로 최근 대형 유조선 시리우스 스타호를 납치한 소말리아 해적을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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