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심 (1966~) ‘사라진 밍크이불’ 전문
그 시절, 어지간한 집엔
장롱마다 그 놈이 살고 있었다
반듯하게 펴려 해도
꼭 어딘가 한 군데는 주름져 있던
털이 여러 군데로 쓸려져
보는 방향에 따라 모습이 달랐던,
가을철에 장롱에서 기어 내려와
겨울 지나 봄까지
방바닥에서 온갖 게으름을 피우며
개켜지는 법 없이
아랫목에서 윗목으로 또르르 또르르
몇 년이 지나도 빨지 않아
털이 송곳처럼 딱딱해지던 밍크이불,
말뿐인 밍크이불
한번 물을 먹으면 너무 무거워
빨랫줄에 걸 수 없었던 짐승,
장사하는 엄마 따라 시장에 나가
한겨울 사과를 덮다가 배추를 덮다가
털갈이를 끝내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던 밍크이불,
너무 순해서 내 동생 같았던
진짜 밍크 같았던
우리 집에도 밍크이불이 있었다. 빨간 바탕에 장미무늬가 있는, 동생이 우유를 쏟은 다음부터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우기도 했던, 밍크이불 얘기를 겨울철만 되면 종종 꺼낸다. 거위털, 오리털로 된 가뿐한 이불이 몇 채씩이나 있으면서도. 이것은 추억을 불러오기 위한 주문이다. 밍크담요 아래 옹기종기 발을 들이밀고 매일 저녁 안녕을 확인하던, 그때 그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날씨 제법 쌀쌀했던 며칠 전에도 밍크이불 얘기를 기어이 또 한 번 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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