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 마음속에는 근본적으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영국 정부의 압제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했음을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가장 적게 통치하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은 ‘건국의 아버지’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80년대 ‘레이건 혁명’의 기치가 ‘작은 정부였던 것도 이런 전통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2년 소련이 해체된 데 이어 1996년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마저 신년 연설에서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국가가 국민 생활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시대는 영원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후 불과 10여년 후 연방 정부는 모기지 회사와 보험 회사를 국유화하고 은행 주식을 사들이는가 하면 자동차 업계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회사채를 매입하고 무제한 발권 채비에 나서고 있으며 내년 들어설 오바마 행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수천 억 달러의 돈을 풀 준비를 하고 있다.
1776년 독립 선언 이후 미국 정부는 창업자의 뜻을 받들어 지금과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로 작았다. 초대 조지 워싱턴 행정부의 경우 장관이라고는 국무에 제퍼슨, 전쟁(당시에는 국방대신 솔직하게 전쟁 장관이라 불렀다)에 헨리 녹스, 재무에 알렉산더 해밀턴, 법무에 에드먼드 랜돌프 등 달랑 4명이었다.
그 후 70년 이상 유지돼 온 작은 정부 기조가 깨진 것은 에이브러험 링컨 대에 와서다. 1861년 남북 전쟁이 터지면서 이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 처음으로 연방 정부가 국민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군 병력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정부 기구가 마구 생겨나면서 연방 정부의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부풀었다.
그러나 1865년 전쟁이 끝나자 연방세도 폐지되고 군인도 시민으로 돌아가면서 정부 기구도 축소됐다. 다시 60년 가까이 작은 정부 체제로 돌아갔던 연방 정부는 1917년 우드로 윌슨이 제1차 대전 참전을 결정하면서 다시 커지나 1년간의 짧은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미국인들이 경험하고 있는 큰 정부의 원형이 마련된 것은 1930년대 프랭클린 루즈벨트에 와서다. 30년대의 대공황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국민들의 경제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만들었고 루즈벨트는 AAA, NIRA, CCC, FDIC, FERA, FHA, NLRB 등 소위 ‘알파벳 수프’라 불리는 수많은 정부 기구를 만들어 이에 응답했다. 소셜 시큐리티가 생긴 것도 이 때다.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과 미국의 제2차 대전 개입으로 연방 정부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지며 전후 군수부문은 줄었지만 1960년대 들어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 공약과 함께 메디케어 등이 등장하며 정부의 역할은 더 커졌다. 지나치게 커진 정부의 비능률과 무능에 대한 국민들의 비판이 ‘레이건 혁명’을 불러왔고 루즈벨트와 존슨의 전통을 이어받은 민주당마저 클린턴 대에 와 ‘작은 정부’를 수용함으로써 큰 정부 시대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9.11이후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에까지 들어가 전쟁을 벌이고 메디케어 이후 최대 복지 프로그램인 ‘처방약 혜택’까지 더해지자 정부는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융 위기까지 겹치자 연방 정부의 규모는 미 역사상 최대로 늘어났다. 지금 형편으로는 큰 정부의 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라 작은 정부의 시대가 끝난 것처럼 보인다.
미 건국 이후 지금까지 역사를 살펴보면 미국 정부는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음을 알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을 크게 만드는 1차적 원인은 전쟁과 경제 위기다. 전쟁과 경제난이 닥치면 정부의 역할 확대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커지고 그것들이 사라지면 과대한 정부 부작용에 대한 비판이 거세진다. 큰 정부와 작은 정부의 순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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