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인간을 만드는 것인지 인간이 역사를 만드는 것인지는 해묵은 논쟁거리의 하나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위대한 인간들이란 주장을 편 대표적 인물로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인 토마스 칼라일을 들 수 있다. 그는 청교도 혁명을 주도한 올리버 크롬웰의 예를 들면서 한 사람의 결정이 어떻게 영국 역사를 뒤바꿔놨는지 설파했다. 그는 “하인에게는 영웅이 없다”는 속담을 들어 위대한 인물도 결점이 많은 인간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하인주의자’로 비판하고 역사는 “영웅들의 전기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정반대 입장에 서 있는 사상가가 레오 톨스토이다. 그는 영웅이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주장은 피상적인 것이며 위대한 인물도 결국은 역사라는 거대한 파도에 떠다니는 부초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역사의 바다가 잔잔할 때 가냘픈 배에 탄 집권자는 그것이 자기 덕이라 생각하지만 폭풍이 일어 바다가 몸부림치기 시작하면 그런 환상은 불가능해진다. 배는 집권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움직이며 집권자 스스로도 자신의 무가치함과 약함을 깨닫게 된다”고 그는 적었다. “영웅이란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존재한 인간에게 붙여진 레이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을까. 역사를 살펴보면 극히 드물지만 한 인간이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은 경우가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예수와 싯다르타의 탄생이 한 예다. 이 두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계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달랐을 것이다. 미국도 그렇다.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험 링컨이 없었다면 오늘의 미국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극소수의 인물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역사를 만들기보다는 그 흐름에 떠다니는 존재라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많은 사가들은 토마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존 애덤스,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기라성 같은 건국의 아버지들마저 미국을 세우는데 필수 불가결한 존재는 아니었다고 보고 있다. 이들이 없었더라면 다른 인물들이 나와 이들과 비슷한 임무를 수행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오직 워싱턴만이 예외다.
노예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미국이 분열위기에 처했을 무렵 수없는 낙선과 사업 실패를 거듭한 무명 인사에서 일약 지도자로 떠오른 링컨도 비슷한 케이스다. 그가 없었더라면 미합중국은 반쪽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갈라져 지금의 유럽 비슷한 모습이 됐을지 모른다. 워싱턴의 반열에 같이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링컨 한 사람뿐이다.
대통령에 취임할 때 미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 임기 중에 역사적 업적을 남기기를 꿈꾸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었으리라. 그럼에도 백악관에 앉았던 40여명의 대통령은 대체로 역사의 흐름을 주도적으로 이끌기보다는 이에 끌려 다니다 임기를 마쳤다.
18~19세기 대통령의 운명을 주로 결정한 것이 외적의 침입, 영토 확장과 노예제를 둘러싼 전쟁이었다면 20세기 대통령은 집권기간 동안 경제가 어떻게 돌아갔느냐로 평가가 좌우된다. 호경기 동안 집권한 레이건과 클린턴은 이란-콘트라와 화이트워터, 르윈스키를 비롯한 숱한 스캔들에도 불구, 지금까지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으로 남아 있다. 반면 한 때 70~90%의 지지도를 자랑했던 닉슨과 부시 부자는 경제가 추락하면서 불명예제대를 했거나 앞두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지 않다. 최선의 정책을 편다 하더라도 이것이 실행에 옮겨져 효과를 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또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어도 오일 쇼크 등 국제 여건이 따라주지 않으면 허사다.
2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미 국민의 그에 대한 한결 같은 소망은 제발 경제만 살려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는 집권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흘러간다. 경제 위기 덕에 백악관을 차지했지만 그 때문에 쫓겨날 수도 있다. 과연 링컨을 닮은 듯한 오바마는 역사를 만드는 대통령이 될 것인가. 그럴 확률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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