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이름이 여럿 있다. 엄마는 나를 ‘큰애’ 혹은 ‘지현’(작명가한테서 지어오신 이름)이라 부르시고, 남편은 나의 세례명을 줄여서 ‘마리(마리아)’ 아이들은 ‘엄마/맘’ 어릴 적 친구들은 ‘영옥’ 성당에서는 ‘마리아’ 미국 친구들은 ‘영’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과 나이 들어 사귄 친구들은 ‘미시즈 리’라고 나를 부른다.
이 중에서 가장 스스럼없는 이름은 ‘영옥’이다. 동그라미가 셋이나 들어간 ‘영옥’이라는 이름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전화를 받았을 때 “영옥이니?”하는 건 예외 없이 고등학교 동창이다. 동기동창은 물론이지만 선배들도 그렇게 한다.
대선배들이나 자주 못 보는 선배들은 영옥씨’라고도 하는데, 거리감이 느껴진다. “영옥이니?”가 정겨워서 좋다.
며칠 전에도 “영옥이니?” 하는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로 J선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2년 넘게 못 만난 선배였는데, 전화로 새해 안부와 동창회 근황을 얘기하고, 가족의 안부도 묻고 전하는 대화를 나누다가, 선배가 느닷없이 나에게 사과를 했다.
“네가 기억할지 모르지만…”으로 시작한 이야기에서 선배는 2년여 전에 나와의 전화통화에서 몹시 불쾌했다고 했다. 내가 어떤 모임에 못 나가겠다는 답을 하면서 ‘그런데’라는 표현을 했다고 했다. 그 표현이 자신을 비하하는 것으로 들려 기분이 몹시 언짢았다고 했다.
그 일로 나를 못 마땅하게 생각해 왔던 걸 사과하면서 그 선배가 “나 혼자 삐졌던 거야”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상대방을 언짢게 하는 언사를 썼다는 내가 부끄러웠고, 나도 몰랐던 일을 고백하며 미안하다고 하는 선배가 고마웠다.
아닌 게 아니라 ‘그런 아이’‘그런 사람’‘그런 곳’ 등의 표현에는 비하하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 그 선배의 말을 듣고 나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초대에 응하지 못했던 생각이 났다. 어떤 지역사회 단체에서 주최하는 성대한 파티였는데 뜻하지 않았던 초대였기에 고마웠으나, 정중히, 미안한 마음으로 못 가겠다고 했던 기억도 났다.
숫기가 없고, 내성적이고, 낯선 분위기를 불편해 하는 나는 ‘그런’ 모임을 피하는 편이다. ‘그렇게 크고, 낯설고, 고급스런’ 파티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청바지와 캐주얼을 선호하는 내게 하늘하늘한 드레스, 칵테일 드레스, 한복 등 ‘그런’ 정장의 패션이 불편한 것처럼 ‘그런’ 성대한 자리는 내게 참 불편한 것이다.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나의 어리석음으로 선배의 마음을 상하게 했으니, 내가 사과를 했어야 하는데, 오히려 사과를 받은 것이다.
여태껏 나만 모르고 있는 나의 죄가 어디 이 뿐일까. 아, 그래서 우리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할 때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해 달라고 청하는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작은 안도의 숨이 나왔다. 여태까지는 건성, 입술로만 하던 그 부분의 고해를 이제는 가슴으로 하겠다고 나 자신과 약속을 해본다.
그리고 말조심을 하리라. ‘아’ 다르고 ‘어’ 다른 멋진 우리말 - 그러나 그러기에 자칫 오해의 소지가 많은 우리말을 내 마음을 올바르게 전달하도록, 표현에 각별히 마음을 쓰리라. 그리하여 올해는 나로 인해 혼자 삐지는 이들이 없도록.
이영옥
수필가·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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