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시작이 중요하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이란 속담부터 ‘시작이 반’이라는 말까지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언은 수없이 많다.
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선거로 당선된 정치인의 파워가 가장 강한 때는 집권 직후다. 시간이 갈수록, 임기 말이 가까워 올수록, 말발이 먹히지 않는 ‘절름발이 오리’가 돼 간다. 대선이 치러지고 나면 현직 대통령은 식물인간에 가깝고 취임도 하지 않은 당선자가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한다. 누구나 그에게 줄을 대려 하고 그의 눈치 보기에 바쁘다. 동서고금을 두고 변하지 않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집권 후 처음 100일을 가장 잘 활용한 정치인으로 꼽히는 것은 프랭클린 루즈벨트다. 1933년 3월 취임한 그는 대공황이란 전례 없는 국가 위기를 배경으로 집권 100일 동안 농부들을 돕기 위한 ‘농업 조정법’(AAA), 노동자들을 돕기 위한 국가 산업 재건법(NIRA), 증시 규제를 위한 ‘증권법’, 처음으로 연방 정부의 예금 보장 규정을 담은 ‘은행법’ 등 수많은 법을 통과시켰다. 첫 100일 동안 많은 법을 통과시킨 것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면 미 역사상 그만큼 성공한 대통령은 없다.
그 후임자로 백악관에 들어간 해리 트루먼은 제2차 대전 종전 뒤치닥거리 하기에 바빴고 그 다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한국전 종전 문제로 골치를 썩이느라 입법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존 F 케네디는 취임하자마자 아이젠하워 때 세워 놓았던 쿠바 침공 계획을 무모하게 실천에 옮기다 실패하는 바람에 망신만 당했고 리처드 닉슨이나 제럴드 포드 역시 별 볼일 없었다.
지미 카터는 집권 초반 의회와의 관계를 망쳐놨던 것이 재임 기간 내내 효과적인 정책을 펴는데 걸림돌이 됐으며 빌 클린턴은 취임하자마자 엉뚱하게 소수 리버럴 진영의 관심사에 불과했던 군대내 동성애자 문제를 들고 나왔다 스타일을 구겼다.
루즈벨트 이후 첫 100일간을 성공적으로 이용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린든 존슨과 로널드 레이건을 들 수 있다. 존슨은 케네디 사후 그에 대한 추모 분위기와 전설적인 그의 협상력을 발판으로 1964년 민권법을 통과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투표권법과 메디케어 법을 제정했다. 고 실업과 고 인플레, 불황의 그늘 속에 당선된 레이건도 취임 직후 대대적인 감세와 지출 삭감 법안을 마련, 의회의 승인을 받아내 장기적인 미국 경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 취임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미 국민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높다. 지금은 역대 어느 대통령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지금 같은 허니문 기간이 오래 지속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그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빠르고 대담한 행동”을 강조하고 백악관이 경기는 좋아지기 전 나빠질 것이라며 기대치를 낮추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바마는 첫 단추로 2,750억달러의 감세를 포함한 8,25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안을 선택했다. 경기 회복이 그의 제1 과제인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연방 회계국 분석에 따르면 이중 3,560억달러에 달하는 건설 예산의 경우 불과 7%만이 올해 집행될 예정이라 한다. 31%가 내년에, 나머지는 그 후 지출되도록 잡혀 있다.
그 돈이 다 풀려도 14조 달러 규모 미 경제를 부양하기에 역부족인데 이렇게 찔끔찔끔 풀어서 과연 효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이왕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과감한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면 감세 폭도 개인과 기업을 포함해 지금보다 대폭 늘리고 지출 속도도 가속화해야 한다.
많은 관측통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향후 100일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기간 내 야심적인 그의 프로그램을 법제화하지 못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야당의 반발, 압력단체들의 로비, 지지 열기의 냉각 등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100일의 기회를 낭비하지 말 것을 오바마에게 권하고 싶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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