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동화작가
얼마 전, 북극에 관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볼 기회가 있었다. ‘북극의 눈물’이라는 이름으로 새해 초에 방송된 MBC의 작품과 다른 한 편은 PBS에서 만든 ‘북극곰’이라는 필름이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들에게 순백색으로 뒤덮인 신화적 공간으로 여겨진 북극이라는 곳, 그리고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친숙한 흰곰을 통해서 오늘날 그들이 얼마나 급속도로 멸종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300일 동안 취재진들이 북극에 머물면서 그곳에 사는 동물들의 생태와 그들을 사냥하고 살 수밖에 없는 이누이크들의 삶을 그린 ‘북극의 눈물’에는 빙하가 녹아 더 이상 먹이를 구할 수 없는 바다코끼리와 북극곰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북극곰의 먹이가 되는 물개가 빙산 주변에 사는 플랑크톤과 새우나 해삼, 조개 등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물개나 순록을 사냥해 살아가는 이누이크 족의 마을도 10여 년 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갑자기 녹아 쏟아져 내린 만년설에 휩쓸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아난 사람들도 일자리를 찾아 마을을 떠났다. 그들의 삶도 결국 먹이사슬로 얽혀있었다. 더 이상 얼음이 얼지 않는 마을엔 오래도록 눈 덮인 들판을 바람처럼 썰매를 끌었던 북극개가 백수가 되어 드러누워 있다. 2007년 한 해만에 워싱턴, 텍사스, 그리고 알래스카를 합친 어마어마한 크기의 얼음이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한편 ‘북극곰’이란 다큐멘터리는 동물들의 생태만을 밀착취재 했다. 순백색의 어미곰과 어디든지 엄마를 따라다니는 새끼 곰의 아름다운 모습이 화면을 그득히 채운다. 북극의 새벽 여명에 반사된 이들 사랑스런 모자의 주황색 털빛은 신비로움 그 자체이다. 그곳에는 태초의 신비와 신화가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하지만 겨울이 와도 먹을 것이 없어진 북극곰 모자는 녹아내린 바다를 헤엄쳐 새로운 땅의 기슭에 닿는다. 그곳은 회색 곰의 영토였다. 서로가 살아가는 영역과 겨울잠의 시기가 달라 이제껏 결코 만난 적이 없었던 두 곰의 족속은 서로 피를 나누고 새로운 종을 만들어냈다.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는 이끼와 풀을 먹고 연명하던 흰곰의 새끼는 결국 어미젖이 마르자 숨을 거두고 만다. 새끼를 잃고 자신의 영토로 돌아가야 할 북극곰은 날마다 바다가 다시 얼어붙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이 두 편의 영상을 보면서 나는 일본의 유명한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가 남긴 그림책 ‘빙하쥐 털가죽’을 떠올렸다. 이 이야기는 베링이라는 꿈의 도시로 떠나는 사냥꾼들의 초급행 열차를 막아선 흰곰들의 반란을 통해 곰, 여우, 빙하쥐와 같은 모든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겐지는 사람과 동물, 식물, 바람, 구름, 별과 태양은 서로 대화하고 교감하고 있다고 믿었다. 신화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모두 우리와 형제들이다. 비록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생명은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할지라도 그는 우리의 삶이 자연에 대해 지나치게 오만에 빠지는 것을 경고했다.
우리는 어쩌면 오래지 않아 눈 덮인 북극의 왕 흰곰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대신 코카콜라 병을 든 북극곰만을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걷잡을 수 없이 달리는 초특급 욕망의 열차를 늦추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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