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면 여주인공 소피가 황야의 마녀에게 저주를 받아 십대 소녀에서 갑자기 팔십이 넘은 할머니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 특이한 점 하나는 순식간에 젊음을 잃어버린 이 소녀의 삶에 대한 태도다. 처음엔 물론 늙고 노화한 팔십 할머니의 몸 때문에 힘들어 하지만 때론 늙는다는 것도 좋은 일이군 이란 말을 할 정도로 소피는 어느 순간 늙어버림으로서 얻은 것들에 대해 편안해하고 종종 평화로운 순간들을 맛본다.
오히려 젊었던 시절엔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업을 잇느라고 자신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고지식하고 답답해하던 소피가 어느새 말 안 듣는 상대방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가 하면 적당히 부드러워지고 세상사에 쾌활한 할머니로 변한 것이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빨래와 집안일을 마친 후 소피가 아름다운 초원에 앉아서 삶을 달관한 듯 차를 마시며 진정한 평화를 느끼는 장면이다. 소피는 젊음을 잃어버린 이후에야 겨우 평화의 순간을 얻는다. 그리고 소피는 할머니가 되어 얻은 지혜와 용기를 가지고 자신뿐만 아니라 마법에 걸린 마법사 하울의 저주를 풀어서 하울과의 사랑도 이루게 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도 평화의 순간에 관한 아름다운 장면이 나온다. 부모가 욕심 때문에 돼지가 돼버린 후 온천에서 일하게 된 센은 얼굴 없는 유령이 가짜 황금으로 일으킨 대 소동을 어린 꼬마다운 무욕과 순수함으로 잠재우게 된다. 그리고 소동 끝에 센은 모든 사건에 열쇠를 쥐고 있을 지도 모르는 마법사 제니바를 만나러 물길을 달리는 기차에 오른다. 기차가 만들어 내는 풍경도 더 없이 고요하고 아름다우며 평화롭다. 센처럼 욕심내지 않고 자기 몫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사람들만이 지치고 어려웠던 시간 끝에 잠시 올라탈 수 있는 기차인 것이다.
젊은 날의 소피처럼 우리는 해야 한다고 믿는 여러 짐들을 스스로 어깨에 지우며 살거나 물질이든 명예든 원하는 걸 가져야 행복할 거라 생각하며 앞 뒤 둘러보지 않고 어디론 가 돌진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평생을 애니메이션에 바치며 살아온 이 노년의 감독은 평화란 가지려고 욕심내는 순간에 있는 게 아니라 움켜쥐고 있는 욕망들을 비우는 순간에 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후 들려오는 그 분의 나눔에 대한 삶에서 느끼는 것도 이런 비움에서 오는 평화가 아닐까.
김현희, 주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