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중 교무(원불교 샌프란시스코 교당)
어릴 적, 할머니께서는 알이 좋고 튼실한 감자가 나오게 되면 그것을 먹지 않고 씨 감지로 한 쪽에 저장해두시곤 했습니다. 그 감자는 한쪽에서 싹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지고, 싹이 어느 정도 나오게 되면 그것을 바로 심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께서는 싹이 난 부분을 중심으로 감자를 이리 저리 자르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땅속에 심으셨습니다. 어린 마음에 ‘저렇게 조각난 감자에서 과연 감자가 날까?’ 하고 의아해했습니다. 한 여름. 밭에는 감자 순이 무성하고, 호미를 들고 나가시는 할머니를 조르르 따라 나섭니다. 감자 순 끝에 주렁 주렁 달린 감자들! 와! 어린 눈에 그런 조각 감자에서 이렇게 많은 감자가 열리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것이 바로 제 눈앞에 펼쳐진 것입니다.
부처님은 지혜의 눈을 가지셨다고 합니다. 어린 눈에는 그 조각 씨앗 감자에서 무성하게 달린 감자를 상상하지 못하고 볼 수 없지만, 지혜의 눈은 조각 씨앗 감자에서 무성한 감자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씨앗을 소중하게 여기고 다룹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이러한 지혜의 눈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원인의 씨앗을 심을 때에는 결과를 보지 못하고, 결과를 맞이할 때는 원인을 보는 눈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과를 맞이할 때는 이유를 몰라 더 원망하고, 원인을 심을 때에는 마음을 챙기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맑고 텅 빈 빛과 같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신기하게도 기쁜 일, 즐거운 일, 괴로운 일, 힘든 일, 슬픈 일 등을 다 알고, 느끼고, 알아차립니다. 텅 비어있는 맑은 빛이 거울처럼 세상의 모든 일들을 받아들이면서 거기에서 희노애락의 감정과 온 가지들의 생각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감정과 생각들은 의식하고 때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상이라는 땅에 씨앗으로 심어집니다. 그리고 씨앗은 시절 인연에 따라서 어디에서든지 어떤 형태로든지 발아되고,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지금 각자의 모습은 어쩌면 오랜 세월 동안 심어진 씨앗들의 결과일지모릅니다.
겨울 가뭄에 목말랐던 대지를 위로하듯이 몇 주간 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를 맞고 생기를 찾는 나무와 풀과 꽃을 보면서, 그동안 어떤 씨앗들을 심었던가 가만히 살펴봅니다. 때로는 의식하고 때로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 세상에 심어졌을 씨앗들을. 이 거대한 우주의 작은 개미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참회하며, 그리고 지금 심어 지는 씨앗들을 가만히 살펴봅니다. 어디에선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마음과 말과 행동을 소중하게 바라보며, 물을 한 가득 머금은 대지에 맑은 생각의 씨앗들을 심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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