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과 난관 극복
위대한 승부사로
“야 임마, 누군가는 해야잖아”
젊은 감독들이 독배라며 고사하던 대표팀 감독직을 뇌경색의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김 감독은 주위의 만류에도 이렇게 감독직을 맡았다.
김인식 감독이 ‘위대한 도전’이라고 불렀던 이번 대회까지 김 감독의 야구 인생은 수많은 고갯길을 넘어야 하는 험로였다.
1965년 고교 졸업과 동시에 한일은행에 입단해 신인왕에 오르며 촉망받는 투수였지만 중·고 시절 혹사한 오른쪽 어깨 때문에 선수로서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5세에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이후 1973년 모교인 배문고 감독을 맡았지만 성적부진으로 4년 만에 해고됐다. 동갑내기로 단짝치구였던 코미디언 배일집씨는 “당시 내가 출연하던 야간업소에서 윤항기씨의 ‘나는 어떡하라고’를 들으며 둘이 많이 울었다”고 했다.
1990년에 프로야구 쌍방울 초대 감독을 맡았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한화 감독으로 부임했던 2004년 12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인생의 최대 시련을 맞았다. 그러나 그는 무서운 의지로 재활에 도전했고 다시 그라운드로 컴백했다. ‘인내와 냉정의 승부사’라는 김인식 리더십도 바로 이런 시련속에서 만들어졌다.
김 감독은 또 시간이 나면 용돈과 아이스크림을 들고 야구 원로들을 찾는 부드럽고 소탈한 야구인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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