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러니입니다. (부부가) 돈 때문에 싸우다가 주먹 휘두르는 바람에 돈이 더 들어가게 되니 말입니다”
한인타운의 한 변호사의 말이다. 불경기가 깊어지면서 가정폭력 케이스가 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돈 문제로 신경이 날카롭던 부부들이 사소한 일에도 격하게 대립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잠깐 분을 못 참고 휘두른 주먹 값이 보통 비싼 게 아니다. ‘주먹 한번 잘못 휘둘러’ 구속되고 나면 보석금에 변호사 선임비용 등 1만 달러는 기본이다. 이어 유죄판결을 받으면 가정폭력 교육과정 이수하느라 돈 들고, 배우자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까지 내려지면 따로 아파트 얻어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니 그 또한 돈이다.
얼마 전 만난 다른 변호사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새해 들어서 왜 이렇게 이혼 케이스가 많은지 모르겠어요. 새해가 되면 보통 새 마음으로 시작하는 법인데, ‘이혼하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건지…”
갑자기 이혼 케이스가 밀려든 것을 그는 지금의 경제상황과 직접 연결하지는 않는다. 대부분 몇 년씩 이혼할까, 말까 망설이던 부부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싫어도 수삼년 참고 살던 그들이 유독 이 시점에 이혼 결정을 내린 것이 불경기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경제적 스트레스로 감정이 예민해져서 평소 별 문제없던 부부들도 다투며 이혼 말이 오가는 것이 요즘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불경기에는 ‘이혼이 늘어난다’ ‘아니다. 오히려 줄어든다’는 보도들이 주류언론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지난여름쯤이었다. 그리고 가을로 접어들며 이혼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한다’ 거나 ‘집이 안 팔려 한집에 산다’는 보도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이혼’ 관련 보도들은 주류사회 저편에서 풍문처럼 멀었다.
‘풍문’이 차츰 현실로 우리 곁에 다가드는 느낌이다. ‘돈’이 발단이 된 가정불화 케이스들이 점점 눈에 띈다. 실직해서 생활이 막막해진 가정, 은퇴기금을 몽땅 주식에 투자했다 날려버린 가정, 주문(손님)이 없어 하루걸러 공치는 자영업자 가정 … 재정적 압박감에 부부사이가 언제 터질지 모를 압력밥솥 같은 가정들이 적지 않다.
가장 충돌이 잦기는 24시간 붙어 일하는 자영업 부부들. 남편은 아내가 물건을 제대로 못 판다고 잔소리 하고, 아내는 남편이 주문을 잘못해서 재고가 쌓인다고 발끈하며 싸움이 그칠 날이 없다고 다운타운의 한 상인은 털어놓았다.
가정문제 카운슬러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나친 음주, 외도, 가정폭력 등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달라도 뿌리는 대개 경제적 압박감으로 비슷한 경우가 많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특히 늘어난 것은 남성들의 음주다. 답답한 마음에 남편은 술 마시는 횟수가 잦아지고, 그런 남편에 대해 아내는 다른 의심을 하고, 그래서 충돌이 잦아지다 보니 이혼까지 고려할 정도로 사이가 악화하는 일이 생긴다.
부부 갈등문제를 오래 상담해온 한 카운슬러는 이런 말을 했다.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그럴 수도 있겠다’ 여기면 사실 문제 될게 별로 없어요.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는 자세로 나오니 화해가 안 되지요”
이번 불경기로 재정적 손실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동산 가치가 떨어져서, 투자해둔 자산이 반 토막 나서, 실직으로 수입원이 사라져서, 감봉으로 월급이 줄어서 … 돈 많은 사람은 많은 대로 적은 사람은 적은 대로 모두가 손실을 보았다.
외양간에 매어두고 흐뭇하게 바라보던 소를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 모든 소 잃은 외양간 신세들이다. 하지만 똑같이 ‘소’를 잃었다고 모든 부부가 사이가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평소 신뢰하고 사랑하던 부부들은 역경 앞에서 오히려 더 긴밀해진다.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본능적으로 똘똘 뭉치는 것이다.
상황이 어려운 요즈음, ‘아,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마음의 사립문을 열어두는 연습을 해야 하겠다. 삐끗 열린 문으로 그가 걸어 들어올 것이다. 들어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까지 부숴서야 되겠는가.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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