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0월 26일 일단의 볼셰비키 추종자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자 전 세계의 진보주의 지식인들은 일제히 찬사를 보냈다. 이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 탄생한 사회주의 정부가 노동자 농민이 주인이 되고 착취와 차별이 없는 평등 사회를 건설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귀족과 부르주아지에 이어 혁명 동지들이 온갖 명목으로 숙청되기 시작한 한참 후에도 이는 과도기적 현상으로 이해했다. 제2차 대전 후 동유럽에 이어 중국과 인도차이나 반도가 공산화되고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 세력이 확대되는가 하면 1979년 아프가니스탄까지 소련이 점령하면서 공산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아프간의 수렁에서 허덕이던 소련은 결국 1988년 퇴각하며 그 다음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그리고 1992년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마저 해체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어째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 혹자는 레이건의 군비 증강을 한 원인으로 든다. 미소간의 군비 경쟁에서 소련이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을 든다. 소련 체제를 되살리려던 이 노력이 오히려 취약점만 노출시켜 붕괴의 가속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근본 원인은 공산 체제의 근원적 모순과 부패한 공산주의자에서 찾는 것이 옳다. 남의 밭보다는 자기 밭에다 씨를 뿌리고 가꿀 때 더 열심인 인간의 본성을 잘못 읽고 이런 잘못된 인식 위에 세워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동원된 폭력과 기만, 특권층의 등장, 불평등과 빈곤 등이 결국 공산 종주국을 망하게 만든 것이다. ‘공산주의 최대 적은 공산주의자’라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소련 몰락 후 미국은 세계 유일의 수퍼파워로 군림했고 자본주의는 유일한 합법적인 경제 체제로 숭상 받았다. 한 동안은 잘 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90년대 후반 들어 하이텍 바람이 불면서 월가는 투기장으로 변했다. 2000년이 지나 거품이 꺼지면서 주가는 폭락하고 세계 경제는 침체 위협에 직면하게 됐다.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는 단기 금리를 1%대로 내려 이를 막으려 했고 처방은 먹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처럼 낮은 금리는 곧 부동산 광풍을 촉발했고 이는 현재 금융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이제 이로 인한 신용 경색을 풀기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자본주의 최대 적은 자본주의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김대중 집권 이후 1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오던 좌파가 몰락하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파업 위협으로 기업과 국가 경제를 흔들던 민주노총과 6.25를 일으킨 북한을 감싸고 오히려 미국을 주적이라 가르쳐온 전교조는 성폭력 은폐 사건으로 몰락의 길을 가고 있고 386의 대표 주자 안희정과 이광재는 모두 불법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치욕을 맛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주 박연차로부터 100만 달러를 받은 것은 아내가 한 일이고 나는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을 했다. 공직자가 아닌 아내는 뇌물죄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자신이 몰랐다고 우기면 끝까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는 계산 같다. 독재자에게 명패를 집어던지고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연고가 있던 지역구를 버리고 나왔다 낙선을 감수한 ‘바보 노무현’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교활한 ‘율사 노무현’이 얼굴을 들고 있다.
노무현의 집사람이 받았다는 100만 달러와 아들이 관련돼 있다는 500만 달러가 뇌물인지 아닌지는 차차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조사에 대한 그의 태도는 한나라당을 ‘차떼기 당’으로 비난하고 깨끗한 정치를 부르짖으며 “인사 청탁을 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는 노무현 브랜드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시중에서 ‘노무현이 아니라 뇌물현’이라고 비웃는 소리를 그는 듣지 못하는가. ‘진보주의 최대 적은 자칭 진보주의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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