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은 “1권·2권으로 된 한 책 같은 게 아닐까?”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 마르셀린 데보르드-발모르였다.
지구상 66억 인구 중 나와 가장 닮은 사람 - 아버지에게 아들은 특별한 존재다. 그런 특별한 인연이 죽고 죽이는 악연으로 끝나는 비극적 사건이 한인사회에서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지난 16일 시카고 인근 노스브룩에서는 50대 아버지가 20대의 아들을 부엌칼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대개의 한인 가장이 그렇듯 엄하고 보수적인 아버지는 대학 1년 다니다 그만둔 아들이 여러모로 못마땅해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가족들은 타살이 아니라 아들의 자살이라고 하지만, 칼을 휘두를 만큼 아버지와 아들 간 불화의 골이 깊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한달여 전 남가주 레돈도 비치에서는 반대로 아버지가 아들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 20대 아들은 정신질환 증세가 있어 성치 않고, 50대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사람 만들어 보려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다독이고 훈계하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 충돌이 잦았다고 한다.
비슷한 사건은 전에도 있었다. 2002년 6월 남가주 글렌데일에서 50 즈음의 아버지가 20대 초반 아들을 칼로 찔러 숨지게 했고, 2004년 7월 오하이오 클리블랜드 인근에서는 20대 아들이 60대 아버지를 숨지게 했다. 차를 몰고 나가려다 아버지와 언쟁이 붙자 그대로 차로 돌진한 것이었다.
한순간에 아버지와 아들이 죽거나 살인자가 된 비극의 중심에서 가장 불쌍하기는 그 가정의 주부들이다. 노스브룩 사건과 레돈도 비치 사건 당시 우연히도 두 주부는 새벽기도에 가던 중이거나 기도 후 돌아오던 길이었다. 충돌 잦은 부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불안한 마음을 오로지 기도에 의지해 달래 온 그들의 아픔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이렇게 극한 상황은 드물지만 비슷한 종류의 어려움을 겪는 가정은 많이 있다.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속 썩이는 아들과 노발대발하는 남편 사이에서 내가 죽겠다”고 푸념하는 여성들이 많다.
똑같은 말썽꾸러기 아들이라도 어머니와는 별 문제가 없는 데 왜 아버지와 이렇게 부딪치는 걸까. 아버지의 어떤 점이 문제가 되는 걸까. 한 정신과 의사는 이런 설명을 했다.
“남자들은 아들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싶어 합니다. 별로 닮은 점이 없어도 굳이 닮은 점을 찾아가며 아들을 분신처럼 여기려 들지요. 그런 아들이 기대에 못 미치거나 낯선 행동을 하면 그만큼 충격이 큰 것입니다”
거기에 사춘기의 기운 펄펄한 아들이 반항적 태도까지 보이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진다. 권위가 손상되었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욱하며 폭력 행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란노 아버지학교의 현덕인 미주지역 본부장은 아버지들의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을 불화의 불씨로 보고 있다. 항상 위에서 지시하고 잘못을 지적하며 가르치는 것을 아버지의 사명으로 여기는 태도이다. 아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접근 방식이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어머니는 아들의 문제를 바로 자신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아들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잘못을 야단치고 가르치려고만 듭니다”
그래서 잘하는 게 별로 없는 문제아들은 아버지를 피하게 되고, 관계는 점점 소원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강도가 나온다. 나그네를 유인해 잠자리를 제공한 후 사람이 침대 보다 작으면 키를 잡아당겨 늘리고, 키가 너무 크면 침대 밖으로 나온 다리를 잘라버리는 괴상한 인물이다.
모든 아버지들은 아들에 대해 꿈이 있다. 내가 1권인 책의 2권인데 왜 안 그렇겠는가. 하지만 그 꿈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은 틀이라면 문제가 있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다면 아버지와 아들 간 불화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지금 지지부진한 2권에 예상치 못한 반전이 있을지 누가 아는가.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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