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부승가회장 문수사 회주 도범 스님
꽃들은 단일 색으로 피기를 원하지 않는다.
보스턴의 봄은 가까이 와 있는가 하면 저만큼 오고 있고, 저만큼 오고 있는가 하고 기다리면 먼저 와서 여름 같은 날씨 속에서 놀고 있습니다. 한 며칠은 여름처럼 덥기까지 하고, 며칠은 겨울날씨로 다시 쌀쌀하다가, 며칠은 봄 날씨로 화창하며, 그런 변덕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여
름으로 성큼 다가갑니다. 또한 봄볕은 분홍에서 푸름으로 때론 보랏빛에서 해맑은 빛으로 그 빛 부심이 현란하게 바뀌곤 합니다.
어떤 나무는 아름다움이 먼저라고 꽃부터 피우는가 하면 , 어떤 나무는 생존이 중요하다며 잎부터 피우고, 오리는 자식이 제일이라며 벌써 새끼들을 부화시켜 물위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습니다. 어떤 나무는 무슨 속셈인지 아직도 겨울나무 그대로 죽은 듯이 서있는 나무도 있습니다.
유심히 지켜보면 잎이 일찍 싹트는 나무는 가을에 일찍 단풍이 들고 낙엽도 먼저 집니다. 그래서 늦가을을 더 아름답게 장엄하기 위해서 봄을 서두르지 아니하고 죽은 듯이 짐짓 늦장을 부리는 나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소원이 있기 마련입니다. 봄은 서두르지 않는 나무같
이 더 좋은 일들을 여유를 두고서 이루어 가도록 가르침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오는 5월 2일이 음력 사월초파일이며 그 무렵이면 잎과 꽃이 다 피고 새들을 비롯하여 온갖 짐승들도 새끼들을 낳아 기르는 희망찬 봄날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새 생명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태어나서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태어났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자주 성찰해보고 그 때마다 새롭게 깨어나야 합니다. 종교나 학문 및 어떤 일을 하건 간에 그건 자기의 몫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것이나 자기의 소유가 되면 모든 것을 적절하게 이웃을 위해 공헌할 때 그때만이 비로소 그 가치가 살아난다고 봅니
다.
부처님이 강탄하신 날을 기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받들어 실천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입니다. 누구나 생일이 평일과 다를 바 없습니다. 새로운 생각으로 다시 깨어나지 않으면 생일이 별다른 의미가 없으며 결코 나이의 숫자만 더하는 잔치가 되고 말 것
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자비와 지혜 광명이며 생명의 근원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은 만 중생이 저마다 진리로 깨어나는 날이며, 모든 생명이 존중받는 자비의 날이요,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보살행의 날입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찾는 인권의 날이요, 억겁으로 쌓인 무명에서 깨어나는 광
명의 날이며, 유주무주 고혼들이 이고득락 하는 해탈의 날입니다.
천년의 어두운 동굴도 불빛 하나로 일시에 밝아지듯 다생겁내(多生劫來)의 무명업식(無明業識)도 부처님의 자비(慈悲)와 지혜광명(智慧光明)으로 일시에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계, 정, 혜(戒定慧) 삼학을 닦지 아니하고 지혜광명만 밝히려고 한다면, 마치 물속에 잠긴 달을 찾기 위해 물결을 헤치는 거와 다를 바 없다고 옛 조사스님들은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참 뜻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사월 초파일에는 특별한 의례로 연등을 밝혀 공양을 올렸습니다. 불(火)로 어두움을 밝히듯 연등을 밝히는 의미도 중생의 미혹한 마음을 지혜광명으로 밝히기 위한 인연이요, 원력이며, 발원입니다.
이번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은 가까운 절을 찾아가 무명에 빠져있는 사람에게는 자아를 밝히는 광명의 등을, 소외된 사람에게는 따뜻한 손길이 담긴 자비의 등을,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쾌유의 등을, 가난으로 허기진 사람에게는 배품의 등을, 유주무주 고혼들에게는 이고득락의 등을 함께 밝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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