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정(화가)
케이가 내 스튜디오 위층으로 이사를 왔다. 십년을 한 빌딩에 있었지만 스튜디오가 이쪽과 저쪽의 끝에 있어서 일부러 찾아 나서기 전에는 볼 수도 없었다. 그런데 케이의 그림세계가 자꾸 커지더니 큰 방을 찾아 내 위쪽에 자리 잡았다. 문 앞에 서서 올려보면 창문이 열리고 불이 켜진 게 보여 케이가 왔네, 아님 아직 안 왔네, 하고 대뜸 알게 되었다.
케이와는 삼십년 지기이다. 미국에 와서 남편동창회에 갔다가 남편동창의 부인으로 알게 되었는데 서로 그림을 맘에 두고, 그 길로 가는 것을 알게 되어 남편과는 상관없이 각자의 그림세계를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 강산이 세 번 반이나 바뀔 동안 케이를 알았는데 케이는 정말 진국이다.
사실 젊었을 때는 케이의 그림세계가 내게 크게 도움 될 것 같지 않아 시큰둥하게 대하기도 했었다. 내가 젊어서 건방진 탓이었다. 케이는 거북이 근성이 있어서 삼십여 년을 차근차근, 성실하게, 누구도 넘겨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 이제는 확고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그런데도 케이의 좋은 점은 건방지거나 우쭐대는 게 없다. 남에게 알리고 싶어 신문기자 찾아 밥 사가며 기사 크게 써달라고 로비도 안하고 내가 이리 잘났으니 나 지나가거든 일어나 박수치라고 주위사람 볶지도 않는다. 그냥 털털하게 이러저러 해서 이제와 이렇게 됐다고, 자랑도 않고 뚝배기 같은 진실의 목소리로 자신이 선 자리를 말한다. 내 작품이 네 작품보다 좋으니 어쩌니 하는 다툼 없이 상대를 존중하며, 수평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성숙한 인간의 품성을 케이는 갖고 있다.
만약 모든 예술가가 케이처럼 자의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다면 아마도 예술계의 치사하고 추한 갈등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젊었을 때의 눈에는 전혜린 같고 ‘생의 한 가운데’의 니나 같은 여자가 멋있어 보였다. 재능에 대한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호를 노래한 ‘빈센트’의 가사에는 now I understand 라는 구절이 있다. 살아생전 많은 이에게 이해받지 못한 그의 행적을 되돌아보며 이제와 나는 이해한다는 말인데... 그 구슬프고 감상적인 노래를 대단히 좋아하면서도 나는 지금도 고호를 이해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예술가라해도 소포를 받아 열어보니 잘라낸 귀가 한 쪽 들어있다면, 나는 기절초풍할 것 같다.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걸까, 혐오하면서 근처도 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최근 영국에서 47살 먹고 못생긴 노처녀 수잔 보일이라는 아줌마가 탈렌트쑈에 나왔다가 저렇게 볼품없이 생긴 게 뭔 노래는 하겠다고, 하며 빈정대는 심사위원과 관중을 믿기지 않는 가창력으로 놀라 자빠지게 한 일이 있었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청중들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놀라 입을 벌리고 그녀가 노래를 마쳤을 때는 온 관중이 서서 기립박수를 열렬히 보냈다.
외모의 미추는 재능이 넘어설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라 해도 인간성이 따르지 못할 때, 그 것을 보고 겪는 가까이의 사람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래서 천재는 외로운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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