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우리 엄마 딸인가?’하는 의문이 종종 든다. 조금 전에도 엄마와 전화를 마치면서 그 생각이 스쳐갔다. 아침에 장내시경을 하시기로 되어있기에 지금쯤이면 끝내고 집에 돌아와 쉬고 계실 줄 생각하고 전화를 드렸었다.
“큰애냐~! 엄마는 지금 미장원 가는 길이다.”
엄마의 트레이드마크인 씩씩한 음성으로 운전 중에 전화를 받으셨다. 병원에서 돌아와 드신 음식을 일일이 다 말하고 나서 남은 하루 일과도 다 보고하셨다.
처음으로 장내시경을 받던 날, 나는 어땠나. 전 날부터 끙끙 앓는 소리를 하며 장 청소하는 약을 힘들게 힘들게 먹고, 내시경을 하고 와서는 무슨 벼슬이라도 한 듯,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 그 당시 나는 오십을 막 넘었고, 지금의 엄마는 팔순을 바라보신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는 전화를 드렸더니, 칭찬받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들떠서 말씀하셨다. 홈디포에 갔더니 꽃모종 좋은 것들이 많이 나와 있어 꽃과 채소 모종 100여 달러 어치와 거름흙 두 부대를 사와 앞에는 꽃을, 뒤뜰의 텃밭에는 야채들을 심으셨단다. 몇 달 전에 씨를 심어 실내에서 키운 고추 모종, 얼마 전에 구해놓은 미나리와 무화과나무 묘목까지 심어놓고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고 하셨다. 작년 가을 갈무리할 때 캐서 화분에 심어 겨우내 지하실에 놓아 싹을 낸 칸나 뿌리를 심으시며 내 생각이 나셨단다.
“작년에 니가 보고 이쁘다고 좋아해서 몇 뿌리 포장해놓았다. 월요일에 우체국 가서 부칠 테니 받는 대로 바로 심어라. 거름흙을 넉넉히 주고 심어야 한다. 부대에 여자가 꽃 심고 있는 그림 있는 흙이 좋더라”하셨다.
나는 작년 가을에 심을 요량으로 사 놓은 튤립 뿌리도 못 심고 봄을 맞아버렸는데, 팔순을 바라보는 엄마는 손수 칸나 뿌리를 캐서 화분에 심어 겨우내 싹을 내어 뜰에 옮겨 심고, 그것도 모자라 시카고에 있는 딸에게도 보내시겠단다.
가끔 새로운 레시피로 이러이러한 음식을 만들어봤다고 하면, 엄마는 조리방법을 꼬치꼬치 물어서 다음 날 바로 장을 보고 그 음식을 만들어 시식하시고 나서, 전화로 보고하신다. 맛있게 드셨다면서 고맙다고 하신다. 손수 만들어 드셨건만 나한테 고맙다고 하신다. 만두를 좋아하는 여섯 딸들을 위해 냉동실에 늘 손수 만든 만두를 그득히 채워두고 인편에 보내기도 하고, 딸네 집을 방문할 때 보온가방에 넣어 손수 들고 오시기도 한다.
한 번은 손수 담근 김치를 들고 오셨는데 시카고 오헤어공항에서 가방이 엑스레이를 통과하면서 걸렸다. 엄마는 짐을 검색하겠다는 공항직원에게 짧은 영어로 이렇게 설명을 하고 무사히 들고 나오셨다.
“이건 김치라고 하는 건데, 내가 당뇨가 있어 이걸 꼭 먹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가. 딸아이한테 주려고 힘들게 김치를 담그지도 못할 뿐더러, 촌스럽게 두 손에 무거운 짐으로 들고 비행기를 타지도 않겠지만, 설사 들고 가더라도, 검사에서 걸려 문제가 되면 그런 재치를 발휘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놓고 올 게 뻔하다.
“엄마, 할머니 피부는 엄마보다 훨씬 더 젊어 보이고 좋아!”
외할머니가 다녀가시고 나면 딸아이가 꼭 그런 말을 한다. 느낌표를 서 너 개는 붙여서 그렇게 감탄을 한다. 잡티 하나 없이 맑고 투명하고 하얗고 뽀얀 엄마의 피부에는 팔순 가까이 살아오며, 수도 없이 많은 역경의 고개를 힘들게 넘으신 흔적이 하나도 없다. 딸아이 결혼을 앞두고 큰 맘 먹고 일 년 동안 정기적으로 마사지를 받아보았건만, 내 피부는 여전히 거무칙칙하고, 레이저로 점을 수십 개 뺐는데도 잡티 투성이건만.
그런데 엄마는 여섯 딸들에게 종종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내 딸들이지만, 내가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너희같이 이렇게 이쁘고 똑똑한 딸들을 낳았는지 모르겠다!”
다른 것 다 그만두고라도 좋은 것만 기억하는 멋진 기억력과 자식들 사기 돋우는데 지칠 줄 모르는 것만이라도 닮고 싶다. 엄마한테서.
이영옥
수필가·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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