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내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공공시설은 단연 비행장, 특히 로스앤젤레스, 서울, 북경 공항들이다. 로스앤젤레스 공항은 그저 모든 기본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충실히 임무를 수행하는, 하지만 딱히 인상에 남거나 크게 칭찬할 것도 없는 그런 공항이다.
올림픽 직전 개장한 북경 수도공항의 제3청사는 드넓은 중국 대륙을 상징하듯 엄청나게 크다. 처음에는 세계적 건축가의 설계로 멋들어지게 지어진 이 건물의 위세에 눌려 은근히 주눅이 들었었지만, 몇 번 다니다 보니 너무 커서 오히려 불편하고 서비스도 무척 노력은 하는데 어딘가 아직 어설프다.
서울 인천공항은 쾌적하고 효율적으로 설계되어지고 모범적으로 관리되는 최상의 공항이다. 공항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오래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이 느긋이 앉아 식사를 하고 음료를 나눌만한 시설이 없는 것이 아쉽다 했더니만 곧 그런 곳들도 생겨난다고 한다.
지난주 자정이 다된 시각에 뉴욕 케네디 공항에 내려 비좁고 낡은 로비를 지나려니 한산한 실내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빈병과 쓰레기 조각들이 눈에 거슬리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어쩐지 맥 빠진 미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남편 대학 동창모임 참가를 위해 뉴욕에서 코네티컷주 동북부의 자그만 마을에 갔다가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로 마련한 GPS를 작동시키고 운전대를 잡았다. 목적지를 입력하고 ‘최단시간’과 ‘최단거리’중 어느 버튼을 누를까 망설이다 ‘최단거리’를 택했더니 고속도로 보다는 꼬불꼬불 온갖 샛길들을 따라가게 인도해 주었다.
놀란 것은 미 동북부 한적한 소도시들 곳곳에 한글 간판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는 사실이었다. 교회, 태권도장, 식품점, 식당 등등. 나는 왜 바로 이 시점에 우리 한국인들이 이렇게 미국에 와서 전국 방방곡곡에 퍼져 뿌리내리며 살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1970년대 초반 내가 고등학생으로 처음 발을 디뎠던 미국은 깨끗한 거리와 자유로우면서도 법을 잘 지키는 사람들로 가득 찬 나라였고, 이민자들을 포함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지금 경제위기라고 야단이지만 내게는 길가에 마구 버려진 쓰레기 조각과 빈 물병들, 법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 타인에 대한 야박한 마음 등등이 더욱 큰일처럼 느껴진다.
미국은 이제 젊은 흑인 대통령을 선봉장으로 내세우고 다시 태어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제도를 고친다 해도 진정한 부활은 어려울 것이다. 전통적으로 가난하고 지친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희망을 주고, 그들의 피땀을 활력소로 하여 키워진 나라, 미국. 바로 그 미국이 한껏 위축되어 있는 오늘, 재미동포사회 같은 이민자의 커뮤니티가 이 사회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불씨를 제공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한인타운에서부터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으며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한인들의 이웃인 히스패닉들과 서로 돕고 잘 지내자는 캠페인을 벌여 조금 더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드는데 힘을 합치는 모습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주류사회에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아니, 향후 5년간 마음 단단히 먹고 한 달에 한번 쓰레기 줍기 운동만 펼쳐도 여파는 클 것이다.
김유경/ Whole Wide World Inc.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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