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 발행되는 잡지 ‘어린이와 문학’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실렸다. 청주에서 지역운동을 하시는 분이 그림책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를 보고 이야기 속에서처럼 할머니들이 운영하는 만두가게 ‘손 큰 할매 만두집’을 열었다는 것이었다.
이 식당은 여느 만두집과 달리 일흔을 넘긴 할머니들이 직접 만두를 빚어 판다. 벽에는 할머니들이 머리에 수건을 쓰고 가겟방에 쭉 일렬로 앉아 만두를 빚는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아래에는 할머니들의 작업 시간표가 붙어 있다.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져 만두를 빚는데 오전반은 아침에 두 시간, 오후반은 점심 이후 두 시간 동안만 만두를 빚어 팔고 거기서 나오는 이윤은 할머니들이 함께 나눠 가진다. 좋은 재료를 쓰고 인색하지 않으니 맛도 좋고 가게 분위기도 좋다고 했다.
노인 인구는 점점 늘어가고 노인들의 시간은 많은데 일자리가 없어 너무 힘든 것을 보고 윤송현씨는 노인복지관을 찾아다니며 인연을 맺어온 20여명의 할머니들과 함께 이 식당을 열었다.
나는 이 소식을 보고 단지 먼 옛날 옛적 환상 속의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는 동화가 우리 삶 속에 놀라운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한 편의 그림책에 담겨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의 현실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우리 창작 그림책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채인선 글·이억배 그림)는 숲속 동물들과 손 큰 할머니가 다함께 모여 만두를 빚고 나누어 먹으며 새해 첫날을 맞는 행복한 모습을 담고 있다.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민담의 세계, 마을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일을 하고 그 결과를 함께 향유하는 공동체의 생활상이 정성스러운 그림과 리듬감 있는 글로 잘 표현되어 있다.
민화풍의 색감으로 그려진 겉장에는 자그마한 몸집의 반달곰, 너구리, 토끼, 호랑이 등 정겨운 우리 토종 동물들과 어마어마하게 큰 소쿠리와 함지박을 머리에 이고 만두를 만들러 가는 퍼머 머리의 할머니가 과장되게 그려져 있다.
지난 설날 장애아이들과 함께 하는 토요학교에서 큰 슬라이드 화면을 통해 이 그림책을 읽었다. 평소에는 집중력이 부족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다니던 한 자폐 아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그림책을 감상했다. 시각적인 이미지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던 아이는 마침내 할머니와 숲속 동물들이 함께 모여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어마어마한 만두를 빚는 장면에선 피식 웃기까지 했다.
개성 있는 필체와 정성스러운 그림이 그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었던 걸까.
그때 장애아이들을 도와주는 봉사자 중 한 학생이 그런데 손 큰 할머니 손이 왜 작아요?라고 물었다. 그건 영어로 ‘generous 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하자 그제야 이해가 가는 눈치였다.
이윽고 우리는 진짜 만두피와 만두소를 펼쳐놓고 만두를 빚었다. 아이들은 그림책에서처럼 신기하게도 자기를 닮은 개성 있는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여우는 여우 만두를, 토끼는 토끼 만두를, 다람쥐는 다람쥐 만두를 빚었듯이 제니는 제니 만두를, 피터는 피터를 닮은 만두를 빚는 게 아닌가.
그리곤 우리 모두 둘러앉아 만두가 익기를 기다렸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위에 얹힌 커다란 가마솥에서 술술 김이 나고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만두가 익기를 기다리는 손 큰 할머니와 숲속 동물들처럼 그냥 마주앉아 바라보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신비한 장작불이 우리 앞에 타오르고 있었다. 그림책이 준 선물이었다.
이미경/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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