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포이에 있는 ‘지혜의 신’인 아폴로 신전에는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평생 추구했던 목표이기도 하다. 자신을 아는 것이 지혜의 시작과 끝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는 어려운 일이다. 인류의 일부분인 인간을 알기 위해서는 인류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인류를 알기 위해서는 인류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 자신을 이해하려면 온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실제로 ‘너 자신을 알라’ 다음에는 ‘그리하면 온 세계를 알게 되리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또 하나의 까닭은 모든 인간은 자기 이해관계라는 렌즈로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살인자 중 자기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참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온갖 이유로 자기합리화에 급급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놓고 네티즌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한 쪽은 지역주의와 학력 차별을 타파하고 깨끗한 정치를 펼쳐 보려다 우파의 음모에 못 견뎌 목숨을 끊은 애국지사라는 주장이고 다른 한쪽은 가난과 고졸의 콤플렉스를 극복 못하고 편 가르기만 하다 나라를 망친 후 위선적인 행각이 드러나자 자살한 못난이라는 것이다.
이 두 주장을 펴는 사람 가운데 상대방에 조금이라도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없다. 끝까지 평행선을 달리다 나중에 가면 욕설로 끝나기 마련이다. 대화와 토론과 타협이 어려운 한국 정치의 현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노무현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힘썼고 전임자에 비해 부정이 덜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18년간 철권통치를 하며 무고한 사람을 숱하게 죽인 박정희나 광주 사태의 원흉 전두환 노태우, 부패의 온상인 한국 정치판에서 일생을 보낸 두 김 씨에 비하면 그는 깨끗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러시아 혁명의 대표 시인 마야코브스키는 사랑의 범선은 일상의 바위에 좌초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말라는 시구를 남기고 권총 자살했다. 이상주의자로 출발한 그는 완강한 현실의 벽에 좌절하고 스스로의 무능과 부패에 견디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 이상주의는 현실주의보다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성’을 최대 무기로 내세웠던 그나 그 가족이 권력을 이용해 돈을 받았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를 ‘가혹한 검찰 수사의 희생양’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그럼 앞으로 뇌물을 받은 공직자는 물렁물렁하게 수사해 적당히 넘어가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대우 건설 남상국 사장의 자살이다. 그는 당시 노 대통령으로부터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고 크게 성공한 분이 시골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하는 일이 이젠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직격탄을 맞고 한강에 몸을 던져 이승을 하직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면 노 전 대통령은 남 사장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불과 5년 간격으로 심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한 사람은 물에, 또 한 사람은 바위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업보 혹은 운명의 힘을 느끼게 한다.
어쨌든 그는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고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지는 것이라는 능엄경의 진리를 연상시킨다.
그를 순교자로 숭상하는 것이나 비겁자로 매도하는 것 모두 사실에 맞지 않는다. 그의 공과 과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한국 사회가 그의 죽음을 넘어 성숙한 단계로 도약하는 길이다. 더 이상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 부분은 깔아뭉개고 높은 목청이 진실인양 위세를 떠는 풍조는 사라져야 한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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