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병원에서 마음에 상처가 있는 J라는 여성을 만났다. 나이는 42세. 아직 활기를 띠고 인생을 힘차게 살아갈 나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렇지가 못했다. 온 몸이 이유 없이 아픈 것이다. 이유를 모른다. 한 가지 병명은 우울증, 그리고 술과 약물과용이라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그녀에게 한 사건이 있었다. 단짝 친구가 임신을 했다.
“만약 내가 너보다 먼저 가는 일이 생기면 검은 장미 한 송이 던져주려무나”
그 말을 무심하게 흘려버렸던 J는 며칠 후 그 친구가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했을 때 너무나 당황했다. 마치 자기가 천하의 죄인같이 생각되었다. 해마다 그녀는 친구의 무덤에 꽃을 바친다. 지금도 그 추억은 J의 가슴 속에 무겁게 남아있다.
전직 한국의 대통령이 산위에서 투신자살을 했다. 이로 인해 한국은 한바탕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철없는 소녀의 자살이나 세상의 정상에서 호령하던 일국의 대통령이나 자살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끝이 없는 고통 속에서 헤매고 또 헤매다가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결정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 때의 심정은 나는 아무런 가치 없는 인간, 나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인간, 나는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 순간 자살의 생각은 태동한다.
그런데 자살하고자 하는 생각은 순간적이지만 자살의 결과는 영원하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한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순간적 생각을 바꿀 수 있으면 자살은 예방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는 각 지방에 자살 예방 센터가 있어 그 예방을 목적으로 활동하며 카운슬링도 하고 치료도 한다.
미국에서는 매년 5만 건의 자살 사건이 있다. 이 숫자는 살인 사건 보다 많은 숫자다. “제가 당신을 돕고자 여기 있습니다.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어려움을 혼자 해결하려들지 마세요. 가족이나 친구나 선생님이나 이웃에 도움을 청 하세요” 이런 말들은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자살과 관계되는 또 하나의 죽음이 있다. 그것은 열사의 죽음이다. 이준 열사는 자결함으로써 나라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렸다. 열사의 자결은 나라를 생각하며 자기를 죽이는 이타적인 죽음이며 자살은 개인의 명예 체면 번민 때문에 죽는 이기적인 죽음이다. 열사의 죽음은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하지만 일반인의 자살은 가족이나 단체, 사회를 갈라놓고 남은 이들에게 부담과 고통을 안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는 고종황제의 장례식보다도 호화로웠고 인도를 구해낸 간디의 장례식보다도 화려했다. 그는 살아서 받아보지 못했던 영화를 죽어서 누렸다.
검찰 수사로 체면과 면목이 땅에 떨어졌던 그는 자살로 자신의 운명을 또 한 번 극적으로 반전시켰다. 그 결과 그는 하루 밤 사이에 시궁창에서 국민의 숭배대상으로 떠올랐다. 그가 택한 자살은 나라를 위한 것이었을까, 자신을 위한 것이었을까? 훗날 사가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이영범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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