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게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경제학자 둘을 들라면 애덤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를 빼놓을 수 없다. 상식을 토대로 한 ‘스코틀랜드 계몽철학’의 대표격인 스미스는 경제 성장에 있어 자유로운 시장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고 현대 공산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는 산업혁명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꿨다.
스미스가 태어난 영국이 소위 영미식 자본주의 체제의 기수라면 사회 복지국가의 원조는 마르크스의 고향인 독일이다. 그가 사망한 1883년은 이래저래 기념비적인 해다. 이 해 독일 재상인 비스마르크는 노동자에게 건강 보험을 들어주는 것을 골자로 한 ‘건강 보험법’을 제정했다. 이어 1884년에는 ‘상해 보험법’이, 1889년에는 ‘연금법’이 통과됐다.
비스마르크는 자신의 정책을 ‘국가 사회주의’라 부르고 자신이 사라진 뒤에도 오랫동안 이는 국가의 기본 정책으로 남을 것으로 예언했다. 비스마르크가 이 법을 만든 목적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의 복지 증진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당시 독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던 사회주의 운동의 지지 세력을 포섭해 국가의 충용한 신민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비스마르크의 계산은 적중해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독립 전쟁을 거치며 국가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게 된 영미인들과는 달리 독일인들은 이를 자신의 복지를 책임지는 보호자로 여기고 있다.
비스마르크 이후 100년 가까이 유럽은 공산권은 말할 것 없고 비공산권까지 너나할 것 없이 복지주의를 국가의 기본 골격으로 삼았다. 영미식 자본주의의 본산인 영국마저 제2차 대전 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모토로 내걸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이 복지 국가의 모델이 제일 먼저 깨진 곳 역시 영국이다. 70년대 노조의 잇단 파업으로 국가 경제가 마비되고 생활수준이 서유럽 최빈국 수준으로 추락하자 대처를 중심으로 자유 시장 경제로의 복귀 움직임이 일어났고 경제는 눈에 띄게 발전했다. 집권당이 보수에서 노동으로 바뀐 뒤에도 기본적인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시장 개혁에 누구보다 앞장선 것은 구 공산 진영이다. 공산 경제의 모순을 누구보다 피부로 경험한 그들에게 시장으로의 회귀는 너무나 당연한 역사의 명령이었다. 1994년 발트해의 소국 에스토니아가 처음으로 세율을 낮추고 단순화한 단일세를 도입했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가 그 뒤를 이었고 2001년에는 공산주의 종주국 러시아가 이를 채택했다.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그루지야 등 구 공산권 국가들이 줄줄이 이 대열에 합세했다. 단일세의 효과가 너무나 뚜렷했기 때문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이렇게까지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지는 못했지만 그 중심 국가인 독일과 프랑스에 감세와 규제 완화 등 시장 개혁을 내건 정권이 들어섰다. 북구 복지국가의 모델인 스웨덴마저 과도한 복지 혜택의 축소를 외친 개혁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유럽은 감세에 이어 시장주의자들의 숙원 사업인 자유 무역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주 타결된 한-유럽 자유 무역협정이 그 예다. 유럽 연합은 자유 무역 비판자들에게 적극적으로 그 필요성을 홍보하고 있으며 프레드릭 라인펠트 스웨덴 총리가 그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이런 유럽의 모습은 소위 영미식 자본주의의 기수를 자처하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이미 2년 전 체결된 한미 자유무역 협정은 언제 비준될 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지금 침체에 빠진 미국 경제를 살리는 첩경은 자유 무역의 확대다. 오바마 행정부는 자동차 노조의 눈치만 보며 미적거리지 말고 하루속히 그 통과를 위해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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