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오후 1시43분(한국시간)...영욕의 85년 마침표
김대중(85)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한국시간) 서거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이날 오후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공식 발표한 뒤 부인 이희호 여사와 김홍일 홍업 홍걸 3형제와 며느리 등 가족과 측근들이 임종을 했다고 발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돼 22일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왔다. 김 전 대통령의 임시 빈소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으며 정부는 장례 형식과 절차 문제 등 후속 조치 논의에 착수했다.
1925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나 1950년대 장면 정부가 이끌었던 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입문한 김 전대통령은 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8,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 김 전 대통령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섰으나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석패했다. 80년에는 5월17일 신군부의 비상계엄 확대조치 때 학생 소요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뒤 광주민주화 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그해 7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는 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85년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으로서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다. 87년 직선제로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정당 노태우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92년 14대 대선에서는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 패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95년 이를 번복하고 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네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그는 이듬해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야권 공조를 앞세워 9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건국 후 첫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김 전 대통령은 특히 대통령 재임 기간,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었고,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김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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