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은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의 하나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며 뉴욕타임스에 칼럼을 쓰고 있고 작년에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요즘 주목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누구보다 먼저 강력하게 부동산 붐의 위험과 그 버블이 터질 때 세계 경제에 미칠 파장에 대해 경고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최악의 상황은 끝났으며 회복에는 2년 정도 걸릴 것이란 그로서는 드문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런 그의 말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행동이다. 그는 이번 달 한참 경기가 좋을 때 250만 달러를 호가하던 뉴욕의 한 아파트를 170만 달러에 구입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02년부터 부동산 버블의 위험을 경고한 워싱턴의 경제학자 딘 베이커도 최근 집을 샀다. 그는 2004년 7년 동안 살았던 집을 산 가격의 3배에 팔고 아파트로 이사했다. 5년 동안 기다리던 그도 이제 가격이 바닥에 근접했다 보고 다시 집을 산 것이다. 그는 10% 정도 더 떨어질 수도 있지만 이자율이 낮고 정부가 8,000달러의 세금 혜택을 주는 것을 감안하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도 좋다고 판단했다 한다.
비관론자들이 잇달아 집을 구입하면서 주택 경기가 바닥을 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대기 매물이 줄어들고 판매가 늘고 있으며 가격도 소폭이지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6월 현재 미 전체 주택 재고는 380만 채로 작년 450만 채에서 크게 내려왔고 주택 건설업자들의 향후 전망을 보여주는 지수도 꾸준히 상승, 연중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 경기가 단시일 내 호전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 남가주의 경우 20~30만 달러대의 싼 집은 거래가 활발하고 가격도 바닥에 온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70만 달러가 넘는 고급 주택은 매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집들은 은행 등 융자 기관에서 35%에 달하는 높은 다운페이를 요구하고 있는데다 그래도 론이 잘 나오지 않는다.
요즘 같은 경기에 그런 경제적 여력이 있는 사람도 많지 않거니와 있어도 구매를 꺼리는 심리가 강하다. 싼 집들은 50~60%씩 떨어졌는데도 비싼 집은 10~20%밖에 안 내렸기 때문이다. 고소득층은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지만 연말까지 실업률이 두 자리 수로 높아지고 연방 정부의 세제 혜택이 사라지면 이들 가운데도 가격을 내려서라도 처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고급 주택의 가격 하락 폭이 싼 집보다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주택가가 바닥을 쳤다 하더라도 이것이 빨리 회복세로 돌아서는 것은 별개 문제다. 2001~2006년의 버블보다 훨씬 정도가 덜 했던 80년대 말 주택 경기 버블이 터지면서 바닥까지 가는데 7년이 걸렸다. 지난 수년간 미국을 휩쓸었던 부동산 열풍은 80년대 일본 수준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집값이 많이 떨어진 라스베가스의 경우 현재 콘도 중간가가 6만 달러 대고 남가주에서도 필랜이나 팜데일에서는 20만 달러 대로 대궐 같은 집을 살 수 있다. 일본 집값은 20년째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택 구입의 가치를 돈만으로 따질 수는 없다. 나도 내 집을 가졌다는 자부심, 커뮤니티에 대한 소속감 등 정서적인 가치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주택 파동은 집은 주거 수단이지 투기 수단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줬다. 부동산을 이용해 돈을 벌 생각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싼 가격대의 집을 지금 사두어도 그리 후회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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