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생일 선물로 준 입장권으로 남가주의 명소, 디즈니랜드를 다녀왔다. 나이가 들어도 꿈과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고 동화 속에서나 만나던 주인공들을 보고 잠시나마 걱정 근심을 잊을 수 있으니 언제라도 또 가보고 싶은 곳이다.
우리 부부는 그 중에서도 니모 잠수함 타기를 좋아한다. 노란색과 파랑색의 니모 잠수함을 타고 물속에 들어가면 창문을 통해 인공적이기는 하지만 온갖 바다의 진기한 풍경과 생물들을 볼 수 있다.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서 실제로 바다 속을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제법 흥미진진하다.
바깥에서 보면 그저 잔잔한 물과 변화 없이 딱딱해 보이는 잠수함의 꼬리뿐이지만 들어가 보면 바다 속은 무척 다른 세상이다.
나의 진료실은 겉으로는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매우 단조로운 곳처럼 보인다. 마치 바다의 표면 같다. 그러나 진료실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가 있으면 온갖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환자들의 인종, 배경, 속사정과 살아온 인생길이 그렇게도 다양할 수가 없다. 질환의 종류는 어떻게 그렇게도 많은지! 바다 속의 각종 고기나 이름 모를 해초들의 종류만큼이나 많다고 할까. 또 같은 질병이라도 환자들의 증상은 저마다 다른 경우가 많다.
나는 매일 나의 ‘노란 잠수함’을 타고 여러 환자들과 갖가지 연유로 만난다.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도전과 긴장으로 하루를 지나다 오층 사무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면 어느새 디즈니랜드 쪽에는 땅거미가 몰려온다.
붉은 저녁노을에 반사되는 수정교회의 종탑은 내 마음을 먼 고향으로 달려가게 하곤 한다. 미국 병원에서 수련 받고 난 후 고향이 그립고 정이 그리워 한인들이 많은 남가주로 와서 개업한 지 어느새 십수년이 되었다.
다른 환자들과 비교해 한인 환자들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정이 많다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고맙다는 표시로 정에 넘치는 선물들을 가져다주신다. 한국에 다녀오시면서 속옷과 양말을 사다주시는 할머니들도 계시고, 손수 짜신 장갑, 목도리, 조끼를 주시기도 한다. 날씨 추운 겨울에는 얼마나 훈훈하지 모른다.
환자 중에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산삼을 캐시는 분이 있다. 얼마 전에는 그 분이 언덕에서 미끄러져 손발이 긁히고 엉덩이에 멍이 들어가며 캔 산삼 뿌리 여러 개를 주시며 건강하라고 당부를 하셨다. 산삼을 입에 넣어보니 씹을수록 쓴맛 때문인지 그분의 정성때문인지 몸이 약간 떨렸다.
그 외에도 직접 만든 만두, 떡, 콩국수, 각종 김치, 빈대떡 등… 미국 의사들이 보면 깜짝 놀랄 선물들과 무엇보다 그 정성에 탄복한다. 아무리 냄새가 나도 이런 음식은 진료실에서 꼭 먹는다. 꼬깃꼬깃 모아 놓았던 용돈 10달러를 ‘점심 사드시라’며 주시는 할머니의 손길에는 목이 메인다.
이러한 분들의 사랑에 긴장과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짐을 느낀다. 정이 많으니 누군가 입원하면 병문안을 많이 오는 민족 중 하나가 한인들이다. 히스패닉만큼이나 한인들은 병문안을 많이 온다. 그리고 환자가 임종을 할 때 그 자리를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민족이 또 우리 민족인 것 같다. 영혼이 하늘로 갈 때 까지 외롭지 않게 함께 해주려는 인정 때문이리라.
정에 울고 웃는 우리 민족이 너무 좋아서 나는 매일 ‘노란 잠수함’을 타고 하루하루를 새롭게 맞고 있다. 오늘 내가 섬길 사람은 누구일까?
김홍식 /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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