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이웃사촌 Bunny를 만났다. 포틀랜드 대학으로 간 딸이 일주일 동안 소식이 없어 전화를 했더니 ‘엄마 일주밖에 안 되었는데… 나 바빠요 하면서 전화를 받아서 서운했다고 한다. 이제 다 컸다고 생각하고 또 자립하고도 싶겠지만, 경제적으로 자립이 안 되는데 몸만 자립하려 드니, 예고 없이 살짝 찾아온 서운함에 잠시 몸 둘 바를 몰라 하기도 한다. 내가 마지막 Teen을 지낼 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결혼을 해야 부모님 곁을 떠난다는 생각을 갖었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대학을 가면서 부모 곁을 자연히 떠나가는 것이 상식이 되어 있다.
그런 서운함이 있을 때, 편지를 써서 내 마음을 아이들에게 전했다. 잘 받아 줄 때도 있었고, 때론 그런 나의 마음이 전해지면 그들이 부담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였다. 절대로 그들에 관해 집착형도 방관형도 아님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겉으로는 성인이면서 속으로는 또 어린아이 이기도 한, 부분적으로 이율배반적인 존재를 어떻게 대하여야 할지 하는 커다란 숙제로 고민하기도 했다.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는 자녀들에게 부모는 뒤에서 응원할 일만 남은 것이다. 예의 바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곱고 귀한 모든 자녀들이 되길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 한다. 자식은 내게 있어 무엇 일까? 할머니의 끝없는 노래, 자식은 어미의 심장일거라는 말이 감동으로 밀려 온다.
마지막 teen도 잘 겪고, 나보다 더 마음이 넓어져 있는 나의 첫아이와 산책을 하였다. 한 사람씩 들어 가야 하는 작은 숲 속 풀섶길이였다. 1984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하여 다른 곳으로 이주하여 청경우독의 생활을 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우리는 생각나는 대로 외우며 걷다 보니 어느새 다른 길과 이어진 새 길을 만나게 되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넓고 드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모두모두 맑고 편안하길 그리고 넘치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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