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무심, 오래전 남편이 책 출판 준비와 다른 일로 한국 방문 중, 가까이 지내던 20년지기 교회친구를 만났다. 아득히 잊고 있었다며 귀한 선물처럼 그녀의 명함하나를 내게 건네주었다. 반가움과 설레임에 이메일을 급하게 띄웠다.
그날 오후, 검안과에 정기검진 예약이 있었다. 검안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이가 있으니 녹내장 검사도 해야 한다면서 노란액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차가운 액이 들어가자 껌벅껌벅 몇 차례 하고 눈을 감았다. 잠시후 건강한 눈이라 판정 되었고 남편은 시력이 아주 약간 약해져 안경을 맞추었다. 우린 그래 세월이 얼마인데 이제 조금 나빠 질 때도 되었지 하며 싱겁게 웃었다. 성냥개비도 여러개 올릴 수 있었던 속눈썹을 자랑하던 젊은 날이 그리웠다. 그 시절, 급할 때는 서로 아이들을 보아 주기도 하며 가족처럼 지내던 명함속의 민수 엄마 생각을 하였다. 젊은 날로 돌아가기에 쉬운 지름길이 거기에 있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꿈을 꾸듯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그때 나누던 기도들, 고민들, 곁에 있던 사람들, 음악들이 봇물 솟듯 끝없이 꼬리를 물고 물꼬를 내고 있었다. 명함 한 장으로 십여 년의 추억을 넘나들며 설레었다. 바닷가에서 들려오는 물개들의 알수 없는 외침을 조용히, 잠시, 서서 듣다 오듯이 말이다.
그날 저녁, 안녕하세요로 시작하는 장문의 이 메일을 받았다. 민수, 지수 엄마예요 사라님. 지금은 굿모닝 어린이집을 하고 있어요. (생략) 오늘도 아침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해서 일에 목숨을 바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늘,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힘들어도 즐겁습니다. 미국3개월 저도 다녀왔는데 예일대, 하버드대, 나사, 캐나다, 디즈니월드 등을 구경하면서 차 렌트해서, 밥솥 들고, 지도 들고 안 되는 발음 민수가 하고 가족이 여행이 다녀서 옛날보다는 더욱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얘기만 했네요.(생략)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건강하세요.
얼마나 반가웠는지, 그리고 얼마나 무심하게 살았는지를 일깨워 준다. 그동안 무엇에 열중하며 아니 동동거리며 살았을까? 아이들 양육, 학교, 직장 등 못내 아쉬운 것들뿐이다. 무심한 여인들이여, 그래도 똑 같은 것이 있다면 우리 모두 똑같은 양의 나이를 더했다는 것! 아마 더 있을 것이다. 이제 천천히 하나, 둘 알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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