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데리고 오던 오후, 집 앞에 나를 기다리는 무리가 있었다. 아이들은 차에서 자고, 집 앞에 있는 서른 개의 눈동자만이 꿰뚫듯 날 응시했다. 야생 칠면조 열 다섯 마리. 그들의 기세에 눌려 골목 어귀에 차를 세웠다.
20년쯤 전이다. 부모님 몸 보신 하시라고 누군가가 보냈다. 칠면조가 온 저녁부터 서울 슬라브 주택골목에선 ‘꺼억’ 소리가 그칠 줄 몰랐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나를 칠면조가 맞았다. 담장 밑으로 몸을 숨기고 오빠가 올 때까지 4시간을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차 안에서 40분을 기다렸다. 살짝 옆집으로 몰려가는 사이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조금 후, 땔감을 가지러 뒷마당으로 나서는데 뭔가 이상했다. 올려다 보니 여섯 놈이 울타리에서 또 보고 있었다. 순간 탁 탁 소리가 나더니 지붕에서 하나 둘 내려오고 옆집에서도 하나 둘 넘어왔다. 왜 우리 집으로 왔을까 무슨 징조일까 의심이 일었다.
요 몇 해 동안 새 일을 시작하느라 괜히 예민해져서, 밤에 꾸는 꿈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날은 일어나자 마자 꿈 해몽 사이트부터 들어갔다. 꿈은 아니지만 칠면조가 수상했다.
인터넷 안에는 오로지 공작에 대한 풀이만 가득했다. 그 순간 칠면조가 공작처럼 보였다. 몸집도 비슷하고 꽁지에 부채가 붙어 있는 것도 같고, 머리 위에 한 두 개 깃털이 올라 온 것 같기도 했다. 공작이 집안에 들어 오는 꿈은 길몽 중에 길몽이다.
마음이 밝아지며 손끝에서 춤이 나온다. ‘그래 공작새들아 맘껏 먹어라.’ 어느새 칠면조 눈도 촉촉해 보이고 걸음도 기품 있어 보였다.
길조는 길조였다. 선잠 자고 깨면 늘 울 던 아이가 칠면조를 보더니 울음을 그쳤다. 풀 뜯어 먹는 걸 보고 안 먹던 샐러드도 달라했다. 텔레비전 본다는 소리도 없고 칠면조 걸음까지 흉내 내며 동물 책을 찾아 들었다. 무엇보다, 하나 둘씩 들어왔다 사라지는 새들을 세느라 11부터 헤매던 아이가 15까지 확실하게 셈하게 되었다. 행복의 기운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역시 행운도 벌거숭이 임금님처럼 마음으로 보는 거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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