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가 안 돌아왔어요. 아무 때나 들어오라고 밤새 밴의 문을 조금 열어 놓고 잤는데…”
다이애나의 두 눈에 그렁그렁하던 눈물이 큰 방울이 되어 뚝 떨어졌다.
“언젠가 외박하고 들어 온 적도 있었잖아요”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가끔 저녁나절 풀어주면 친구들과 실컷 놀다 밤늦게 귀가하곤 했다는 찰리. 다이애나는 찰리가 외출을 하는 날은 그가 귀가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밤거리 친구들의 꼬임에 빠져 가출하지나 않을까, 밤거리를 쏘다니다 차 사고는 당하지 않을까, 개나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지는 않을까, 항상 마음을 졸였다.
찰리는 그녀가 자식처럼 키우는 수고양이 이름이다. 그녀의 남편 이름이 찰리여서 ‘아들’인 고양이를 찰리 주니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흑인인 다이애나와 찰리는 60에 접어든 금슬 좋은 홈리스 부부이다. 건강 잃고 집 잃고 낡은 밴을 몰고 다니며 생활한다. 남편 찰리는 심장질환을 앓고 있다. 나는 그들을 주일 아침 베델 한인교회가 노숙자들에게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샌타애나 시청 앞 봉사 현장에서 자주 만난다. 자식이 없는 이들 부부에게 찰리는 친자식 못지않았다. 처음 내가 멋모르고 찰리를 가리키며 “네 고양이냐?”고 물었을 때 다이애나는 정색을 하고 나를 힐책했다.
고양이라니? 내 자식인데!”
7번 유산을 경험한 다이애나 부부는 자식을 포기하고 살다 13년 전 생후 2주된 찰리를 아들로 맞아들였다. 다이애나는 남편과 ‘아들’을 모두 찰리라고 불렀다. 그녀에게는 남편과 자식을 구별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듯 보였다.
한동안 ‘아들’의 이름 역시 찰리인줄을 몰랐던 나는 심한 혼돈을 체험했다.
“찰리가 배탈이 나서 약을 사왔는데 안 먹겠다고 저렇게 버티니 어쩌지”
이불을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남편 찰리 곁에 아들 고양이도 축 늘어져 누워 있었다.
“챨리가 바람이 났지 뭐에요. 노숙자 친구가 어제 밤 밀애 현장을 목격했대요”
얼굴에 미소까지 띄며 남편의 애정행각을 전하는 다이애나가 도통한 여자처럼 보였다.
한번은 찰리가 토해낸 ‘헤어볼’이라며 골프공보다 약간 작은 털 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남편 찰리가 애들처럼 별스런 장난감을 다 갖고 논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이 전혀 없는 나는 ‘헤어볼’이 장난감인줄 알았다.
나는 다이애나를 통해 고양이에 관한 적잖은 지식을 얻었다. ‘헤어볼’이 자기 털을 핥고 다듬는 습성이 있는 고양이가 삼킨 털이 위 안에서 뒤엉켜 공처럼 뭉쳐진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고양이 나이를 인간 나이로 환산하는 계산법도 배웠다. 한 살짜리 고양이는 인간 나이로 15세, 두 살은 24세, 세 살부터는 4년씩 더해주면 상응하는 인간 나이가 된다. 고양이는 네 살이 전성기이다. 평균 수명은 15년, 인간의 평균수명 76세에 해당한다.
“저 녀석이 13 살이니 실은 나보다도 더 늙었거든. 인간 나이로 치면 68세에요
다이애나는 노쇠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아들’을 애처롭게 쳐다보며 종종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사뿐사뿐 뛰어 오르내리는 동작이나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다가와 머리를 비벼대는 어리광을 보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잠도 많아졌고 청력이 떨어져 말귀도 어두워졌다고 했다.
일주일 뒤 샌타애나에서 다이애나를 다시 만났으나 찰리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앞발로 잠든 엄마의 머리를 톡톡 치거나 껄끄러운 혀로 얼굴을 핥아 깨워 아침밥을 챙겨 먹던 아들 찰리를 생각하며 다이애나는 목이 메었다. 그녀는 찰리가 자택을 소유한 새 부모(?)를 만나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기를 기원했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홈리스 생활을 청산하고 캠퍼나 RV를 하나 구해 여생을 보내는 것이다. 그날이 오면 찰리 같은 자식 하나 또 입양해서 오순도순 재미나게 살 거라며 다이애나는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옆에 서 있던 남편 찰리가 다이애나를 꼭 끌어안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들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황시엽 / W.A. 고무 실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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