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BS에서 ‘고요 한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였다. 독일 성 베네딕토회의 대수도원장이었던 노르베르트 베버신부가 찍어 놓았던 사진과 116분 짜리 흑백 무성영화를 편집하여 만든 작품이었다. 1911년 그는 그가 파송한 선교 사들과 선교지를 살피러 처음으로 한국엘 왔는데 “내가 그렇게도 빨리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나라”라는 고백처럼 한국을 좋아하게 된다. 가난 속에서도 자연과 더불어 살며 가치 높은 노동형태인 ‘품앗이’가 이미 생활화 되어있고 효도를 근본으로 가족이 책임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참으로 고귀한 민족이라 하였다. 첫 방문을 마치고 돌아갈 때 진한 아쉬움을 나타낸 그는 결국 사백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를 세상에 내어 놓는다.
일본의 식민지 정책과 근대화의 물결마저 불자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잃을 위기가 왔 다고 느낀 그는 마침내 14년 만인 1925년 수동식 카메라를 메고 2차 방문을 하여 그의 책을 바탕으로 영화제작에 돌입한다. 소달구지를 타거나 걸어서 부산에서 금강산, 간도까지 우리선조들이 사는 곳곳을 찾아 다니며 삶과 문화 유적은 물론 고유한 풍습 까지 세세하고도 정확하게 챙겨 담는다. 장장 만 오천밀리에 달하는 이 기막힌 영화 는 베버신부의 한국 에 대한 사랑과 연민으로 만들어진 열정의 산물인 것이다.
딱딱한 바닥에 돗자리 하나를 깔고 자며 막걸리, 쓴 장죽의 담배, 매운 김치, 목침, 뜨끈한 구들장, 거기에 소박한 밥상과 능숙한 젖가락질까지. 그는 한국인의 모든 삶을 직접 살아 내었다. 성당보다는 학교와 병원을 더 많이 짓고 가난퇴치에 앞장섰다. 겸손한 목자이면서 문학가요 예술가인 그의 예리한 관찰력은 일제가 허물어버려 지금은 없는 혜화동 고개에 있던 혜화문과 금강산 장안사의 아름다운 모습도 남겨 주었다.
배오게시장(동대문시장의 전신)에서의 서민들의 모습과 서울 한 가운데 흐르는 개천 주변의 서정적인 모습도 빠뜨리지를 않았다. 우시장의 활기찬 모습, 단오 날 전국에 걸리던 그네, 절벽위의 사찰, 모내기와 새참, 박해 받던 초기 신자들인 옹기 장이들의 삶, 물레와 베틀, 짚신, 온 동네 잔치인 운동회에서 장례절차까지……
그가 “자연과 더불어 살며 하루 종일 자연과 함께 지내다가 석양을 뒤로하고 밝은 미소를 머금은채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우리 선조들의 본모습이 돌고 돌아 마침내 우리 곁으로 온 것이다. 화면 속에서 하얀 무명 옷을 입고 선량한 얼굴로 눈을 마주치는 그들은 바로 우리 모두의 오빠요 누님이다. 낯익고 정겨운 그 속에서 다시금 같이 한번 살아보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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