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파트 건물을 보고 큰집이라며 어린 딸은 좋아라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미국생활 20년 동안 이삿짐을 8번 쌌다. 유타에 처음 정착하여 1년 동안 두 번, 캘리포니아로 와서 신학교 입학 전 6개월, 학교 기숙사 4년, 교회개척 당시 아파트 생활 4년, 아이들 학교 옆에서 4년, 그리고 이 아파트로 오기 전 집에서 7년을 살았다. 가장 오랫동안 머물었던 집이었다. 교인들이 모여 찬양연습,세미나, 당회등을 하며 집인지 교회인지 구분 모르게 살던 집이었다. 무엇보다도 남편과 마지막으로 살던 집이었다. 남편의 흔적이 구석구석마다 남아있어 그의 숨결이 느껴지는 집이었다. 그 집에서 남편의 추억과 함께 오랫동안 살고 싶었는데 그것이 맘대로 되질 않았다. 막내딸과 둘이 살다보니 주택 관리도 힘들고 렌트비도 만만치 않아서 부득불 작은 아파트로 옮기게 된 것이다. 또 새로운 이웃을 만들어야 하는 낯선 곳으로 왔다.
살던 집보다 더 작은 곳으로 이사를 가려니 이십 년 동안 우리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거의 반은 버려야했다. 이런저런 추억이 서린 것들을 버리려니 우리 가족이 공유했던 삶의 한 부분을 제거하는 듯해 가슴 한편이 비는 듯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집 주위를 둘러보니 앞 꽃밭에 심어둔 꽃나무들이 나를 잡는 듯 하고, 뒤뜰에 가꾸어 놓은 텃밭의 갖가지 채소들이 나의 손길을 아쉬워하는 듯했다. 내가 떠나면 새 주인이 오기까지 몇 개월이 지나는 동안 물 한 방울 뿌려 줄 사람이 없어 말라 죽을 것을 알기 때문일까, 바람결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그지없이 슬퍼 보였다. 얘들아 마지막 물이다 실컷 먹고 새 주인이 올 때까지 참고 버텨야 한다며 땅이 질펀하도록 물을 주며 작별인사를 했다. 3년 전 남편이 이 집을 영원히 떠나더니 나도 이제 떠날 시각인가 보았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영원한 내 집은 없다. 어떤 연유에든 주인은 바뀌고 또 바뀌어간다. 영원한 내 집, 우리가 육신을 벗는 날 가야하는 그 집, 내 영혼이 육신의 집에 잠시 거하다가 그것이 허물어지는 날 다시는 낡아지지 않는 영원한 집으로 이사를 간다.
그때는 빈손으로 간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한사람도 예외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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