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 구단 사상 최고로 꼽히는 투수는 좌완 샌디 쿠펙스이다. 컨트롤 난조로 애를 먹는 박찬호에게 여러 차례 특별지도를 하기도 한 쿠펙스는 지금도 7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하게 후배들을 지도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다저스는 1959년부터 1966년까지 8시즌 동안 네 번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이 가운데 세 번 우승했다. 당시 다저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선수가 바로 쿠펙스이다. 그는 1961년부터 6시즌 동안 무려 129승을 거두면서 사이영 상을 3번이나 거머쥐었다. 특히 그는 양대 리그를 통합해 시상하던 사이영 상의 마지막 수상자이다. 한마디로 쿠펙스는 한 시대를 풍미한 철완이었다.
1966년 27승을 거둔 쿠펙스는 이듬해 마운드를 떠났다. 팔꿈치 부상이 이유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31세. 수술과 재활이 얼마든 가능하고 최소 몇 년은 승수를 착실히 쌓아갈 수 있는 젊은 나이였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 미련 없이 현역에서 은퇴했다.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떠나겠다던 자기 다짐을 지킨 것이다.
여자골프계 지존으로 군림해 왔던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가 지난 주 은퇴를 선언했다. 골퍼로서 한창 물오를 나이인 29세로 지난 3년간 세계 랭킹 1위를 지켜 온 오초아의 은퇴발표는 예상 못했던 일이라 그만큼 놀라움이 컸다.
정상급 선수가 은퇴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만 특히 최정상에 있던 선수가 돌연 은퇴한 경우는 거의 전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분분한 추측과 해석을 낳았다. 하지만 평소의 오초아를 잘 알고 있던 동료들은 그녀의 성격과 가치관에 비춰볼 때 놀랄만한 결정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오초아는 대스타이지만 겸손하고 인간적인 선수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난한 사람들, 특히 미국 내에서 저임금 허드렛일에 종사하는 멕시코 사람들에 대해 깊은 애정과 연민을 보여 왔다. 프로 골퍼지만 골프에만 매몰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온 오초아는 은퇴 역시 자기 주관에 따른 선택을 했다.
은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다. 무엇을 소중히 여기느냐와 상황에 달린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은퇴가 최선인가를 획일적으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정상에 있을 때 물러나는 것은 드물기 때문에 그만큼 신선함을 안겨 주는 것이 사실이다.
오초아가 은퇴를 발표하자 몇 년 전 역시 최정상에 있을 때 골프계를 떠났던 아니카 소렌스탐은 자신의 블로그에 “LPGA 투어의 모든 선수들이 그녀의 플레이와 성품, 웃음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뭔가 아쉬움과 그리움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 좋다. 쿠펙스가 그랬고 오초아가 그렇다.
또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는 것은 투자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다. 투자를 할 때 고려하는 요소는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 지와 손실의 위험을 얼마나 피할 수 있을 지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익을 우선 고려한 결정이 현명하겠지만 정상에 오른 선수에게는 ‘손실 회피’ 역시 중요하다. 이미 얻을 것 다 얻고 이룰 것 다 이뤘기 때문에 추가적인 투자는 자칫 이익보다는 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정상에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고 오직 지켜 내느냐, 아니면 내려 오느냐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럴 때는 ‘손실 회피’가 현명한 전략이 될 수 있다. 역대 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 19명 가운데 15명이 바로 그해 은퇴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모친을 대표로 내세운 매니지먼트 회사를 새롭게 차린 김연아가 언제까지 현역생활을 이어갈지 추측과 의견들이 분분하다. 가족의 입장에서 천문학적 액수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이 그녀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벌만큼 벌고 더 이상은 받을 수 없을 만큼 뜨거운 사랑을 받은 김연아 에게는 오초아의 결단이 참고가 될 만하다.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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