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영(목사)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란 말의 뜻은 같은 침대에 자면서도 다른 꿈을 꾼다는 말이다. 즉 가깝게 있으면서도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말함이다. 오늘의 교회상에서 그 옛날 하나님의 일에만 몰두하는 예수와 인간의 일에만 몰두하는 베드로가 바로 그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독교 정통성인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고백하여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곧 이어 “예수는 절대로 십자가를 질 수 없다”고 말해 예수님으로부터 사단으로 전락했다.
소위 기독교 역사상 이단을 정죄하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정통이 순식간에 사단으로 돌변한 이유는 바로 동상이몽이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의 길은 십자가 위에 죽으러 가는 길이었지만 베드로의 길은 화려한 정치야망의 길이었던 것이다. 한국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일제하와 6.25 동란 등 수난의 역사 때마다 참으로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이 정통성을 유지하면서 민족의 십자가를 진 것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 수난의 시기가 지난 오늘날의 교회상을 보면 대부분 인간사만 도모하며 화려한 목회를 꿈꾸면서 예수의 신성, 인성이 다 정통이라 자부한다. 그러면서 “나는 절대로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며 예수 앞에 팔을 벌리고 가로막는 베드로의 화난 모습, 그리고 “나의 발은 절대로 씻길 수 없습니다.”며 “다른 사람은 다 버릴지언정, 나는 절대로 예수를 버리지 않겠다”고 거짓 맹세하던 베드로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림은 무슨 이유일까?
그 때의 베드로나 지금의 나나 꼭 같은 제자이다. 베드로의 세속친구인 “절대로”가 오늘 우리 예수의 제자들 마음속에 공존한다면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한 말 같이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이고, 너는 나를 배신하는 제자이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제자라고 말씀하실른지, 누가 알 수 있을까? 나는 미국에 와서 안수받은 목사, 영주권 우선 순위 덕분으로 영주권을 받았다. 이 영주권이 생활고와 외롭고 소외된 우리 한인들의 십자가를 지도록 예수께서 주신 것이라 생각하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된다. 나 역시 예수를 이해하기 전의 베드로의 모습과 다를 바 없고 항상 화려한 인간적인 목회의 꿈을, 예수와 동행한다면서 동상이몽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그 베드로가 예수의 길을 이해하고 난 후 화려한 세상 성공에 편승한 “절대로”의 유혹을 버리고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을 그려본다.
생활고로 죽어간 베이사이드 부부의 십자가, 우울증으로 약하나 쓰지 못하고 골방에서 신음하는 많은 우리 한인의 십자가. 괴로움으로 지금도 죽기만을 바라는 우리 형제,자매의 십자가를 찾아 나서지 못하는 안일한 이 제자에게, 예수께서 책임을 물으신다면 그건 절대로 내 책임도 아니고 또 우리 교회들의 책임도 아니라고, 베드로와 같이 변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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