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이곳저곳 한인회들이 싸움에 휘말려 있다. LA한인회는 30대 회장선거를 둘러싼 파행이 계속되고 있으며 동부의 뉴저지 한인회에서는 회장의 독직문제가 불거지면서 한인회가 둘로 쪼개질 위기에 놓여 있다. 회장이 민원 서비스료로 받은 돈을 제대로 입금하지 않은 것이 발단이 된 모양인데 액수의 미미함으로 볼 때 성원들 간의 오래 내재된 갈등이 이 일을 빌미로 폭발한 것으로 보여진다.
1960년대 후반 근대이민이 본격화 되면서 미주 각 지역에서 한인회들이 탄생했다. 한인들이 수적으로 미미하고 모두가 외로웠던 그 시절 한인회는 자연스럽게 이민자들의 사랑방과 구심점 이 됐다. 이후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의 정치적 질곡의 시대에는 한인회가 저항의 상징이 되기도 했으며 한인회장 선거는 한인들이 억눌린 정치적 분노를 분출하는 욕구 해소의 이벤트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선거전은 매우 뜨거웠으며 선거가 치러지는 날이면 자발적으로 나온 유권자들로 투표장 앞은 장사진을 이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한인회장들은 그런대로 중량감 있는 인사들이 선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한인회가 실질적으로 한인사회를 대변하던 시절은 그때로 끝났다.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인사회가 커지면서 단체들은 자연스럽게 전문화되고 세분화 됐다. 비즈니스와 관련한 한인들의 이해관계는 업종별로 조직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직능단체들이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
또 주류사회와 연관된 이슈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젊은 대변자들이 나서 열심히 뛰고 있다. 그렇다고 한인회가 한국어로 벌이는 계몽 캠페인이나 민원에 적극적인 것도 아니다. 보통 이런 일들은 자원봉사자들을 주축으로 한 젊은 단체들이 앞장서고 있다.
한인회가 봉사를 앞세우며 한인사회를 대변한다고 소리를 높이지만 실제로는 필요할 경우 얼굴을 빌려주는 정도가 고작이다. 실질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역할에 국한돼 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한인회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그런데도 2년마다 한인회장 뽑는데 입후보자들과 한인사회가 치르는 금전적, 감정적 대가는 너무 크다. 마치 과일을 깎는 일에 소 잡는 칼을 드는 모양새다.
이런 분위기, 이런 제도 아래서는 명망 있는 인물들이 선거에 나서기 힘들다. 19세기 제임스 브라이스 경은 정치판을 관찰한 후 “훌륭한 사람들은 대통령이 되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다. 리더로서의 자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전투구의 싸움판과 경선과정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브라 이스의 관찰은 한인회장 선출과정에도 대체적으로 적용된다.
이번 한인회장 선거로 빚어진 파행은 왜소해질 대로 왜소해진 한인회의 위상을 더욱 실추시켰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왜 한인회를 ‘그들만의 리그’라고 조롱하는지 한인회 사람들은 뼈저리게 곱씹어 보고 부끄러워해야 한다. 존경은 고사하고 존중이나마 제대로 받으려면 일그러진 이번 선거를 하루속히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한인회는 왜소해 졌는데 구성원들의 생각은 여전히 거창한 이름과 과거에 갇혀 있다. 그래서 한인들은 한인회의 행태를 보면서 몸에 맞지 않는, 너무 헐렁한 옷을 걸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불편함과 어색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인회가 제 대접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 자기인식의 눈높이부터 낮춰야 한다. 그리고 회장 선출방식도 줄어든 몸에 맞게 고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봐도 자리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인사들이 봉사라는 말을 너무 쉽게 입에 올리는 것은 듣는 입장에서 거북하다. 이들의 언행 불일치가 행여 열악한 재정과 환경 속에서 한인들의 의식을 깨우고 올바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계몽하는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진정한 봉사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걱정돼서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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