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통합한국학교 창립 40주년에 부쳐
한미교육재단이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모범적으로 운영해 온 동포사회의 대표적 한글학교인 ‘워싱턴 통합한국학교’가 지난 6월 13일 뜻 깊은 40번째 생일을 맞이하였다. 재정 및 교육 시설의 미비를 비롯한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민족교육, 한글교육의 현장을 지켜온 ‘워싱턴 통합한국학교’는 물론 모든 한글(한국)학교 봉사자님들께 깊이 머리 숙여 감사를 전하고 싶다.
40년 전, 모든 것이 낯설고 지금처럼 한인동포 만나기가 쉽지 않던 시절, 미국의 수도인 이곳 워싱턴에 이민와서 하루속히 영어를 배워 미국 문화에 동화되는 것만이 살 길이고 생존의 첩경인 것으로 여겨지던 시기에,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 한인동포 1세들이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고자 세웠던 ‘워싱턴 통합한국학교’의 역사는, 영어가 아닌 한글을 통해 ‘한민족의 얼’과 ‘한국인의 영혼’을 지키고자 했던 이민 선배들의 선구적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도 워싱턴 동포사회의 급속한 성장에 맞추어 우리글과 우리말을 지켜내고 이어가려는 많은 자생적 한글학교들이 한인교회의 지원 속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80여개가 넘는 한글학교의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40년의 역사를 가진 워싱턴 통합한국학교조차 제대로 된 전용 교육관 하나 갖추지 못한 채 늘어나는 교육수요를 위해 매번 장소 임대문제로 전전긍긍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말해주듯, 다른 많은 영세 한글학교들이 겪고 있는 열악한 재정, 교재 및 시설문제 등은 새삼 거론이 불필요한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영어는 전 세계 203개국(국제연합 기준 193개국) 중 39개국이 공식국어로 채택하고 주요한 국제 의사소통 수단으로 인정받아,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국방력, 경제력과 더불어 ‘세계 공용어’란 이름으로 2차 대전 이후 국제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영어를 이곳 미국 땅에 살며 제대로 익혀 하루속히 주류사회로 진출하고 우리 2세, 3세들도 더 이상 이방인 이민자가 아닌 당당한 미국시민으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조지 워싱턴대학의 역사교수인 그렉 브레진스키가 주장하듯, 이제 미국 사회는 다양한 문화의 이민자들이 흡수되어 하나로 녹아 없어지는 ‘멜팅 팟(MELTING POT)’의 사회가 아니라 각각의 고유한 맛과 색깔을 간직한 채 한데 어우러진 ‘샐러드 보울(SALAD BOWL)’처럼 민족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면서 더불어 발전하는 다민족 이민사회로 가고 있다.
따라서 해외동포사회가 한민족으로서의 얼과 정체성의 유지, 계승에 필수적인 민족교육과 한글교육의 중요성은 더 이상 방관할 수없는 중차대한 국가적, 범동포적 과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재외동포재단에서 해외동포 2~3세를 대상으로 민족정체성 확립을 위한 정부차원의 전문 교육문화센터를 경기도에 마련한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해 해외동포들이 몇 명이나 갈 수 있으며 다 큰 아이들 불러 짧은 체류기간 얼마나 가르칠 수 있겠는가.
어려운 이민 살림살이에서 생활비를 쪼개어서라도 한글만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며 주말이면 아이들 손잡고 한글학교 찾아오는 주부들의 애국심도 명심하고, 4개월에 200불인 등록금도 힘이 들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서민 동포들의 아픈 현실에도 정부는 눈을 떴으면 한다.
조기 한글교육, 민족교육에 대한 투자는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한 소중하고 절박한 장기 투자다. 첫째 해외동포 자녀들이 최소한 한글교육만큼은 맘 편히 무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과감하게 지원하자, 둘째 현지실정에 맞는 한글교육 해외 전용교재 개발에도 정부가 적극 앞장서자.
정부의 멋진 결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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