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5일간의 여름휴가에 들어갔다. 지방 모처에서 가족들과 쉬면서 책도 읽고 정국 구상도 하고 있다고 한다. 취임 후 정신없이 달려온 대통령에게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이 대통령은 무조건 열심히, 많이 일하는 것이 선이라는 ‘개미의 가치’가 지배하던 시절에 성장한 사람이다. 그가 평생 몸담아 왔던 건설 직종은 특히 더 그렇다. 그러니 항상 바쁘게 움직이면서 지시를 내리는 그의 스타일은 살아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 배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휴가 안 가기로 유명하다. 워크홀릭인 대통령은 법정 휴가일수인 연 21일을 모두 사용하기는커녕 열흘도 채우지 않아 외국 언론이 이런 사실을 보도했을 정도다. 그렇지만 항상 분주하고 무언가 해야 편안함을 느끼는 듯한 그의 스타일과 바지런함이 나라를 위해 꼭 좋은 일이기만 한 것일까.
리더는 현명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기준으로 해 흔히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유형으로 꼽히는 것은 게으르면서 현명한 리더이다. 이 분류는 2차 대전 독일의 명장인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의 장교 평가방식에서 따온 것이다. 폰 만슈타인은 장군으로 승진하기에 가장 적합한 군인으로 게으르면서 똑똑한 장교를 꼽았다.
이 분류는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거침없이 교환되는 장소로 커피 자판기 앞과 화장실 세면대, 흡연실 등이 가장 많이 꼽힌다. 한마디로 높은 사람 없는 곳에서 밑의 사람들의 창의력은 한층 더 날개를 편다는 말이다. 그러니 윗사람의 게으름은 조직의 창의성을 위해 바람직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체를 보면서 위임하고 조절할 줄 아는 현명함이 전제돼야 하지만 말이다.
현명하고 부지런한 리더의 경우 어리석고 부지런한 사람보다는 백번 낫지만 너무 똑똑한(혹은 똑똑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리더를 둔 조직의 구성원들은 쉬 피곤해진다. “내가 해봐서 좀 아는데”라며 리더가 내리는 시시콜콜한 지시를 따르다 보면 자연스레 리더의 입만을 바라보게 되고 창의력은 질식된다.
정서는 무서운 전염성을 갖고 있다. 심장병동 간호사들의 심기가 환자들의 생존율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도 있다. 간호사들의 정서적인 상태에 따라 환자들의 생존율이 최고 4배까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리더의 정서적인 상태 역시 그렇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리더의 심기는 조직원들에게 그대로 전달돼 창의력과 효율성을 높아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대로 리더가 쉴 새 없이 지시를 쏟아내고 다그치다 보면 눈치 보기와 면피성 태도만 남게 된다.
휴식은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것이지만 특히 리더에게 더욱 필수적이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리더가 너무 일상에 매달리다 보면 숲을 보는 일이 힘들어 진다. 그래서 일부러 일에서 거리를 둘 수 있는 휴가가 필요한 것이다.
은퇴 전 빌 게이츠는 매년 2차례씩 ‘생각 주간’이라 부르는 휴가를 갖기 위해 잠적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은둔 기간에 자신의 별장에 틀어박힌 채 사색과 구상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진로를 결정한 많은 중요한 아이디어들이 이 과정을 통해 탄생했다. 그러고 보면 휴가야말로 가장 생산성이 높은 활동일지도 모른다.
한 문화학자는 21세기에는 일만 하는 사람보다는 제대로 쉴 줄도 아는 사람이 더 각광 받게 될 것이라며 이것을 속담에 빗대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고 비유했다. 이 비유를 조직론에 접목시켜 본다면 “나는 리더 위에 노는 리더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대통령의 휴가는 그 자신은 물론이고 나라를 위해서도 좋다. 재충전을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전을 갖고 돌아오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 남은 휴가일수를 다 사용하길 간곡히 당부한다. 그만큼 모두가 정서적으로 더 편안해질 테니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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