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 무용수 실력 ‘눈길’
LA 한국문화원 30주년 기념공연으로 이루어진 ‘한국무용의 어제와 오늘’ 공연이 지난 9월23일 한국문화원 소극장 아리홀에서 있었다. 이날 공연은 전통무용, 창작무용, 발레,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작품들이 옴니버스 형태의 공연으로 전개되었다. 작품 하나 하나에 진중함이 담겨 있어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공연진들과 함께 호흡하며 소극장 특유의 긴박감이 시종 가득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양길순의 ‘도살풀이’는 이제 이 춤이 양길순의 춤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고 김숙자 선생에게 직접 이 춤을 사사받은 무용가로, 스승에게서 배운 이 춤 하나만을 오랜 세월 추어온 양길순의 춤꾼의 면모가 공연의 무게를 더했다. 정중동의 신비스러움을 다소곳한 여인의 모습으로, 때로는 신명에 찬 무녀의 모습으로 그려낸 양길순의 도살풀이를 다시 LA 무대에서 접하게 되어 반가웠다.
‘여령무’는 처용무 전수 조교로 활약하며 오랫동안 전통무의 기교로 다져진 임남순의 창작무용이다. 궁중 기녀(여령)들의 희로애락을 여러 장면으로 바꾸어 표현해 가면서 요염한 정감으로 다가오는 아낙의 정취를 밝고 명쾌하게 그려냈다. 전통무용의 흥과 멋이 임남순의 연기력과 함께 잘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4인무로 추어진 ‘파 드 꺄트르’는 국립발레단장을 지낸 김긍수가 재안무, 편성한 발레 소품이다. 중앙대학 1년생들의 발랄한 기교들이 생기있게 선보였다. 김긍수는 한국 발레의 대부격인 임성남의 수제자로 한국 발레의 세계화에 앞장선 2세대 대표주자이다. 또 다른 4인무 ‘해적’은 발레의 고전 프티파의 ‘해적’ 중 한 장면인데 역시 김긍수의 매끄러운 안무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현대무용 두 작품을 안무한 김제영(백석대 교수)은 동작과 이미지적 표현의 추상성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일상을 그리려고 노력하는 안무가이다. 두 작품 모두 그의 역량이 한껏 살아 숨 쉬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이 살만 했다. 오늘날 바쁘게 돌아가는 거리의 표정없는 사람들의 일상을 영상을 곁들여 표현한 ‘도시 사람들’, 지아비를 잃어버린 여인의 슬픔이라는 전통적 주제를 현대무용적 언어와 기법으로 그린 ‘열녀’는 우리 현대무용의 다양성을 체험하게 하는 작품들이었다. 열정적 기교로 좋은 인상을 남긴 유장한은 많은 가능성이 지닌 남성 무용수로 기대된다.
정작 발레와 현대무용이 전무한 LA 한인무용계에 좋은 자극제가 되어준 공연이기도 했던 이번 공연에서는 LA를 대표, 김응화의 제자들이 장구춤을 오프닝으로 선보였다. 한인사회에서 배출된 2세대들인 안리나, 황하나의 잘 훈련된 기교와 장래성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의 삶의 향기가 배어 있는 전통문화의 그 뿌리를 미국 땅에 심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추진해온 미주예총의 행사에 꾸준히 동참해 준 LA 한국문화원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우리 한인 동포들이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우리의 이민자적 삶속에서 지탱해 나갈 수 있도록 그 구심점 역할을 문화원이 앞으로도 지속하여 주길 기대한다.
이병임 (무용평론가, 미주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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