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던 지난 9월9일 저녁 6시, 산 부르노의 조용한 주택가가 폭발했다. 순식간에 불기둥이 1,000피트나 치솟고 지축이 흔들렸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근처인 탓에 주민들은 대형 비행기 추락사고거나 큰 지진으로 오인했다. 9년 전, 뉴욕의 9.11 테러의 악몽을 떠올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노후한 개스관이 폭발 원인임이 곧 밝혀졌다. 1956년에 제작된 30인치 개스 수송관이 아무 예고 없이 터진 것이다. 터진 파이프를 잠그지 못해 근 2시간 동안 개스가 화산처럼 분출돼 피해가 더 커졌다. 이 사고로 주변 10에이커 지역이 초토화돼 37채 가옥이 소실되고 8명의 희생자를 포함, 50여명의 사상자가 났다. 끔직한 사고가 바로 우리들 뒷마당에서 터질 줄 몰랐다.

개스회사 PG&E, 주 전력 감독청(PUC), 그리고 연방안전국(NTSB)이 각각 원인조사에 나섰다. 제어기기 고장, 개스관 손상, 직원조작 실수, 그리고 개스관의 부식 등을 사고원인으로 꼽고 있다. 최근 조사는 폭발 몇 시간 전, 30마일 떨어진 밀피타스의 전력 터미널에서 자동 전력공급 시스템(UPS) 교체공사를 한 것을 밝혀냈다. 공사 중, 정전이 되면 개스 압력변화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해 갑자기 발생한 고압개스가 폭발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개스관의 부식을 더 큰 가능성으로 꼽고 있다. 개스관 부식은 땅속을 스며든 지하수가 개스관 외부를 부식시키는 경우와 내부부식이 있다. 개스관 내부부식은 파이프 안에 소량의 물이 고일 때, 그 곳에 박테리아가 서식, 개스관 내벽을 손상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내부부식으로 인한 폭발사건은 10여년 전, 뉴멕시코 페코스강 캠프장에서 일어난 게 가장 컸다. 그 사고로 온 가족 12명이 몰살했는데 조사 결과, 50년 된 노후 개스관 속에 박테리아가 서식, 파이프를 부식시키는 독성개스를 뿜고 있었음이 발견된 것이다.

실제 PG&E 는 2005년 이후 7,200마일의 개스관을 검증, 7군데의 내부 부식현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개스관 내부 검증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위 ‘스마트 피그’란 자동기기를 파이프 속에 넣어 초음파나 자기장을 이용 부식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산 부르노처럼 오래된 구릉지대 주택가의 개스관들은 구경이 좁고, 굽은 곳이 많아 ‘스마트 피그’ 같은 측정장치를 사용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개스관 내부 부식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고 이후, 연방과 주 의회는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들을 서둘러 법령화하고 있다. 우선 모든 개스관에 자동잠금 밸브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번 사고 때도 자동장치가 없어 개스관을 수동으로 잠그는데 근 2시간이 걸려 피해가 커졌다. 그리고 주택지의 고압 개스관은 내부 부식검사를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법적 조치보다 더 중요한 건 평소에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다. 인프라 시설관리의 강화이다. 미국의 경제사정이 나빠지면서 인프라 구축과 관리가 점점 소홀해지고 있다. 철도, 항만, 고속도로, 교량, 상하수도, 전력공급 등, 모든 미국의 인프라 시설이 급격히 노후화 되고 있다. 특히 초고속철도나 공항 등, 최첨단 인프라 시설은 미국이 한국이나 중국에 훨씬 뒤쳐진다.

이번 사고가 미국의 방치된 노후 인프라시설들이 시한폭탄의 위험물로 변질돼 가는 징조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김희봉 환경엔지니어·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