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유럽이 중세에서 빠져 나와 독립 국가가 생겨나면서 너도나도 자기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기 위해 피나는 경쟁을 벌였다. 이들은 그 최선의 방법은 부의 원천인 금을 많이 보유하는 것이라 믿고 수출을 장려하고 수입은 제한했다.
외국으로 물건이 많이 팔려나가면 돈이 많이 들어올 것이고 수입을 안 하면 금고에 돈이 쌓일 테니까 나라도 자연히 부자가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것이 소위 중상주의다.
그러나 아메리카 식민지를 개척해 금과 은이 쏟아져 들어온 스페인이 잘 살기는커녕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스페인에 들어온 금은보화는 상품은 한정돼 있는데 돈만 찍어낸 것과 같은 효과를 내 인플레를 유발했다. 스페인 정부는 거저 생긴 돈을 산업 자본으로 전환하는 대신 사치와 전쟁 비용으로 탕진했다. 결국 이 돈은 왕실과 일부 귀족의 배만 잠시 불렸을 뿐 국민 생활 개선에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반면 작은 섬나라 영국은 방직기계와 증기기관 등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산업 혁명에 성공하며 자유무역을 통해 유례없는 부를 축적했다. 아메리카와 인도, 남아공에서 호주, 홍콩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로마 제국이래 최고의 부강한 나라가 됐다. 이를 본 사람들은 나라가 진정으로 부강해지려면 금을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기술혁신을 통해 산업을 부흥시키는 것이 첩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부의 길은 기술혁신과 자유 무역에 있다는 것이 확고히 입증된 지금도 옛 중상주의의 오류는 주기적으로 고개를 들곤 한다. 요즘과 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 더욱 그렇다. 남의 나라야 어떻게 되건 말건 내 나라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관세를 붙여 외국 물건 수입을 막고 자국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려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외국 물건 수입이 안 되면 자국 산업이 번창할 것이고 수출이 잘 되면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내 나라 물건에 관세를 붙여 못 팔게 하면 당한 나라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보복 관세를 붙여 상대방 물건 수입을 막을 것이며 상대방 통화 평가 절하에 맞춰 자국 통화 가치도 떨어뜨리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관세 전쟁과 환율 전쟁이 벌어진다.
이 전쟁의 승자는 아무도 없다. 전쟁이 가열되면 가열될수록 무역량은 줄어들 것이고 결국 두 나라 수출업체는 다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자국 산업 생산을 늘리고 실업자를 줄여 보려던 정책이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이 일어나자 세계 각국은 모두 관세 장벽을 높이고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수출을 늘리려 했지만 역효과만 내고 경기 회복을 늦추는 것 외에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했다.
세계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대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비슷한 일이 일어나려 하고 있다. 미 연방 하원은 중국이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해 수출을 늘리고 있다며 환율 조작국을 응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브라질 정부는 세계가 환율 전쟁에 돌입했다며 자국 화폐 가치를 낮추려 하고 있다. 너도나도 화폐 가치를 낮추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내가 낮추면 상대방이 낮추고 내가 더 낮추면 상대방이 더 낮춰 결과는 처음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세계로 보나 나라로 보나 경제를 발전시키려면 양질의 교육을 통해 고급 노동력을 길러내고 이를 통해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이룩한 후 자유 무역을 통해 교역량을 늘려야 한다. 그러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 불경기의 책임을 이웃나라에 전가하고 이를 비난하는 것은 돈도 안 들고 편하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어떤 길을 택하려 할지는 너무나 분명하다.
성경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사망으로 이르는 문은 크고 길도 넓어 찾는 이가 많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문도 작아 찾는 이가 적으니라”고 쓰여 있다. 성경 말씀이 진리인 것은 종교 문제만이 아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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