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프랑스의 대 작곡가 구노 하면 아베마리아가 떠오른다. 슈베르트 등 여러 유명한 작곡가들이 아베마리아란 이름으로 많은 작곡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구노의 아베마리아가 가장 많이 불리고 가장 유명한 노래다.
이 노래가 탄생하게 된 연유에는 한국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구노는 1818년에 태어나 1893년에 타계했다. 조선시대 말의 대원군은 1820년에 출생하여 1898년에 타계를 했으니 구노와 대원군은 동시대의 사람들이었다. 천주교 탄압과 천주교 신자들의 박해가 가장 심했던 대원군 집정시대에 구노와 가장 친했던 앵베르 주교는 중국으로 파송되었다가 조선대목구주교로 임명되어 한국으로 파송되었다.
한국으로 가면 거의 순교하게 된다는 사실을 유럽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대원군은 집정당시 8,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을 학살하였고 이 학살 소식이 전 유럽에 퍼져있었으니 앵베르 주교가 한국으로 파송이 되었다는 사실을 안 구노는 놀라움에 정신마저 혼미하게 되었다. 천주교 신부가 조선으로 파송된다는 사실은 곧 사형장으로 가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었다.
구노와 앵베르는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우정이 두터웠고 친 형제 이상으로 돈독하게 지냈다. 앵베르와 구노는 음악적인 재질이 뛰어나 앵베르도 음악학교로 진학할 것이란 믿음이 구노에게 있었는데 놀랍게도 앵베르는 신학교로 진학을 하였다.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하자 신부로 서품을 받고 중국으로 파송되었다. 구노는 중국으로 파송된 앵베르를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했다. 중국에 가면 새로운 문물을 접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며, 생각과 안목이 깊어질 것이라고 위안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앵베르 주교가 순교했다는 소식을 학교의 소식란 벽지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구노는 놀라움과 슬픔에 휘말려 뒷동산으로 정신없이 뛰어 올라가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성모마리아 상 앞에 엎드려 울고 또 울다가 즉석에서 아베마리아란 성모송을 작곡하게 되었다.
누가복음 전반부의 내용을 집약한 기사와 성 베르나르도의 시를 요약한 가사를 내용으로 탄생한 성모송 아베마리아, 천주교의 노래들 중에 대표적인 노래가 된 것이다. 천주교를 전파하다가 순교한 앵베르 주교는 지금 명동 성당 지하실에 성 최경환 프란체스코와 함께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들으면서 조용히 잠들어 있다.
조선이 아니었으면 가장 유명한 성모송으로 나타나지 못했을 노래 ‘아베마리아’. 세상은 누구든지 한번 왔으면 한번은 또 가야 한다. 오는 것에는 영원이란 것이 없지만 가고나면 간 자리에는 영원이 남는다.
영원한 자리를 적시며 위안하고, 우리들 마음속에 무형을 유형으로 환원시켜 그립게 해주는 구노의 아베마리아. 조선이 아니었으면 어떤 형태의 노래로 태어났을까?
김윤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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