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27일 레바논 베이루트 소재 시리아 대사관 앞에서 아사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집권초 개혁 시도하다 철권통치로 선회
바샤르 알-아사드(46) 시리아 대통령이 2000년 집권 이후 11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중동 다른 국가에 비해 비교적 잠잠했던 시리아의 반 정부 시위는 지난 18일 시위대와 보안군 간 첫 충돌이 발생한 이후 불과 열흘 만에 전국으로 확산되며, 아사드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아사드 대통령은 전혀 뜻하지 않게 최고 권력을 쥐게 된 인물이다.
안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그는 1994년 대통령 후계자였던 형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숨지자 후계자 지위를 승계하고 고국으로 돌아와
‘대권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시리아로 돌아온 아사드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하페즈 알-아사드의 권고에 따라 군 경험을 쌓으며 차기 대통령으로서의 입지를 서서히 다지기 시작했다.
2000년 6월 하페즈 전 대통령까지 서거하자 그는 35살의 젊은 나이에 대통령직을 차지하게 됐다.
영국 유학 시절 서구 문물을 몸으로 체득한 유학파답게 그는 취임 직후 정치사범들을 석방하고 언론 통제를 완화하는 등 일련의 개혁.개방 조치를 단행했다.
1970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뒤 30년 간 철권통치를 해 왔던 아버지의 시대와는 다른, 젊고 활력 넘치는 새로운 시리아를 예고하는 듯 했다.
그러나 ‘다마스쿠스의 봄’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2001년부터 민주화 세력에 대한 탄압을 시작했고, 집권 바트당의 일당독재 정치체제를 유지하는 등 정치개혁의 드라이브를 멈추고 말았다.
1963년부터 시행된 국가비상사태법도 그의 집권 이후 서슬 퍼렇게 유지돼,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제한됐고, 안보를 위협하거나 위협할 소지가 있는 인물에 대한 당국의 체포권은 무한 보장됐다.
그가 개혁조치를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당시 시리아가 처해 있던 대외적 상황에서 찾을 수 있다.
시리아는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이스라엘에 골란고원을 빼앗긴 앙금 때문에 이스라엘과는 적대적인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진영에는 중동평화를 저해하는 ‘불량국가’로 낙인찍히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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