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이가 동안거를 끝내고 하산하였다. 수도승은 아니지만 대학 때부터 까까머리를 하던 것이 지금까지 같은 헤어스타일이므로 우리끼리는 그렇게 통한다.
실은 일을 하느라 겨울동안 스키장에 머문 것이다. 스노보드 타기를 좋아하는 아들아이는 겨우내 맘모스 스키장에서 알바를 하며 보냈다. 보수는 적으나 공짜로 스노보드를 탈 수 있다며 자원한 것이다. 올해는 기록적으로 눈이 많이 와서 보드도 잘 탔지만 눈 치우느라 고생 좀 했단다. 몸무게가 10파운드나 빠져 돌아왔다.
봄에 시작되는 본업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돌아온 것인데, 산엔 아직도 눈이 쌓였고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며 못내 아쉬운 눈치이다. 야구시즌이 시작되면 스프링캠프에 가서 선수들의 통역과 뒷바라지를 위해 다저스 팀의 연습구장이 있는 애리조나로 떠난다. 3월부터 11월까지는 더운 곳에서, 야구의 오프시즌인 12월부터 2월까지는 추운 곳에서 일을 하는 아이를 보며 역마살도 유전인가 싶다.
이민 와서 사는 우리들을 향해 ‘디아스포라’라고 흔히들 말한다. 그 말 속엔 ‘방황한다’ ‘유배’ ‘흩어짐’이라는 뜻이 들어 있고 그래서인지 공연히 애잔하다. 고달픈 이민의 삶을 표현하는 듯하다. 아이는 우리보다 편하게 살길 원하였는데 아이도 대 이은 방황인가 하여 어미의 마음은 편치 않다. 나의 외조부도 게릭호를 타고 미국 땅을 밟은 최초의 이민자 102명 중 한 분인데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하신 집안의 역사가 있다. 그걸 보면 디아스포라의 대물림이 아닌가?
우리 내외도 처음부터 유목민은 아니었다. 남편이 공부 마치면 다시 돌아 가리라던 유학생활이었다. 공부 마친 후 이곳에서 일을 시작하다 보니 눌러앉게 된 것이 디아스포라가 된 것이다. 이곳에서의 삶이 26년째로 접어들어 한국에서 살던 연륜과 비슷해져 간다. 이곳은 이제 익숙한 유배지가 된 것이다.
얼마 전 텔리비전에서 본 툰드라의 사람들이 생각났다. 수시로 짐을 싸서 동토
의 땅을 가로지르는 순록과 유목민들의 삶이 신산했다. 그들의 고달픔에 감정이입이 되어 가슴이 아프기도 하였다. 삶에 적응하는 애어른 같은 꼬마들이 애처롭지만 대견하였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삶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히려 아들아이는 붙박이가 아닌 유동적 삶을 즐기는 듯 보인다. 아들의 아비도 남들이 흔히 하는 직업보다 젊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 후회가 없다며 아들의 결정에 힘을 실어준다.
아들아이의 동창들 대부분이 대학 졸업 후 로스쿨로 진학할 때 아들은 다른 길을 모색했다. 이곳의 여느 한국 부모들처럼 ‘사’자 붙은 무엇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다수의 결정과 역행하는 아들의 엇박자가 내심 못 미더웠다. 무엇이든 튄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 아닌가 말이다.
아들의 적성이나 희망은 고려하지 않은 채 좋은 대학만 가길 바라는 부모였다.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맘대로 자식이 되는 듯 어깨가 으쓱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이젠 자신의 뜻대로 할 차례라는 듯 제 갈 길을 가는 아들아이가 못마땅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태어난 성인이 다 된 아들을 내 뜻대로 조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들이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제 아빠의 사무실 일을 도우며 책상물림이라도 할 줄 알았던 기대는 이젠 포기하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정작 내 아이가 그리 살고 싶다니 걱정스럽다.
집 떠나 스프링캠프로 향하는 신유목민 아들 앞에도 희망의 봄길이 펼쳐지길 소망한다.
이정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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