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국교육위원회연합회(National School Boards Association) 연례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일 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컨퍼런스에서는 전국 각처에서 온 교육위원들을 만날 수 있는데 교육 현안에 대해 서로 간에 의견을 나누거나 정보와 경험을 공유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유익하다.
이러한 컨퍼런스에서는 유명 인사들을 기조 연설자로 초청하는데, 필자가 이전에 참석했던 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한 유명 인사들 중에는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과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도 있었다. 올해는 첫 날 기조 연설자가 부시 대통령 당시 국무장관을 지냈던 콘돌리자 라이스였다.
현재 스탠포드 대학에서 교수로 있는 라이스 전 장관은, 자신이 어렸을 때 인종차별 대우를 당하면서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학문적으로나 국가 정책 부문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하면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출신 배경이 아니라 어디에다 목표를 설정하고 나가느냐 라고 역설했다.
그런데 이 날의 기조연설 중 예상치 못한 해프닝을 목격하게 되었다. 라이스 전 장관의 연설 도중 연단 앞쪽에 가까이 앉아 있던 한 중년 여인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이라크 전쟁에서 희생된 미군 병사들의 자녀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큰소리로 항의를 하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라이스 국무장관은 연설을 멈추게 되었고 이 여성이 장내의 보안을 담당하는 경호원들에 의해 회의장 밖으로 내보내지기 전까지 계속적으로 반복하는 항의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성이 끌려 나가는 과정에 큰 물리력 동원과 소란은 없었다.
라이스 전 장관이 그 후 연설을 다시 계속하기 불과 2~3분이 안 되어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또 이라크 전쟁 때 죽은 무고한 이라크인들의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항의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번에는 남자였는데 같은 항의를 대여섯 번 반복하는 사이 경호원들에 의해 회의장 밖으로 내보내졌다. 그 후에도 두 명이 추가로 라이스 전 장관을 전범이라고 몰아세우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항의가 이어졌다.
부시 대통령 때 이라크 전쟁 정책에 깊숙이 개입했던 라이스 전 장관의 과거행적을 비난하는 그룹의 일원들이 라이스 전 장관이 북가주 지역에 와서 연설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직적으로 벌이는 반대시위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컨퍼런스 회의장에 출입증을 위조해 갖고 들어와 앉아 있다 기조연설 때를 맞추어 한 명씩 시간차를 두고 항의시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날 필자에게 큰 인상을 준 것은 그러한 조직적인 항의시위보다도 그러한 시위에도 의연하게 대처했던 라이스 전 장관의 태도였다. 물론, 과거에도 비슷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에 크게 당황할 상황은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라이스 전 장관은 이러한 돌발사태에 대해 “민주주의가 조금 시끄러운 부분은 있지만 독재나 억압으로 인해 강요되는 침묵보다는 훨씬 낫습니다”라며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예찬론을 기조연설에 즉석으로 넣어가며 연설을 차분하게 마무리 짓는 것이었다.
나도 교육위원으로 있으면서 지역 주민으로부터 교육행정에 대해 비판도 듣고 때로는 다소 거친 항의를 대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좀 더 나은 교육행정과 양질의 교육환경 조성을 위해서는 다각적인 견해를 청취할 필요가 있음을 인정한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누리기 위해선 때로는 불편하고 소란스럽기도 하지만 반대의견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자세를 기회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바라건대 우리 한인사회도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는 각자의 지역사회에서 크고 작은 다양한 정책수립 과정에 과감하고 적극적인 의사 표현을 했으면 한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고 또 우리의 자손이 살게 될 지역의 정책이 수립되고 결정되는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언제까지나 주류가 아닌 주변인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일룡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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