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이 생긴 이래 가장 보편적인 정치 제도는 왕정이었다. 이집트도, 메소포타미아도, 인도도, 중국도 모두 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그 자식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이처럼 광범위한 지역에서 18세기 이전까지 거의 모든 나라가 이를 채택했다는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증거다. 일반 가정에서도 가부장이 집안을 통솔하고 아버지가 죽으면 자식이 재산을 물려받는 것이 상식이었기에 왕이 통치하다 죽으면 자식이 뒤를 잇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18세기 들어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계몽사상이 널리 퍼지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미 독립 전쟁과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왕조는 물러가고 민주주의 시대가 열리는가 싶었다. 그러나 왕정에 대한 향수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의 적자‘를 자처하며 자유 평등의 기치를 내걸고 유럽 전역을 정복한 나폴레옹은 민주주의를 짓밟고 자기 손으로 왕관을 쓰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워털루에서 지지만 않았더라면 프랑스는 오랫동안 나폴레옹 제국으로 남았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유배당한 뒤에도 프랑스 인들이 선택한 것은 왕정이었다. 기요틴의 이슬로 사라진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와 그의 동생 샤를 10세가 차례로 왕위에 올랐다. 샤를 10세는 단지 왕이 된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과 귀족의 자자손손 특권을 보장하는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역사를 되돌리려다 1830년 7월 혁명으로 쫓겨난다.
그러나 그가 물러난 뒤에도 프랑스 인들은 루이 필립을 왕으로 선택했고 그가 1848년 2월 혁명으로 물러난 뒤 대통령으로 뽑힌 나폴레옹의 조카 나폴레옹 3세는 삼촌을 본받아 민주주의를 폐지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1870년 그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더라도 프랑스는 오랫동안 나폴레옹 제국으로 남았을 것이다.
소위 ‘대혁명’을 일으킨 프랑스와 프랑스 인들이 이처럼 오랫동안 왕정을 유
지해 온 것으로 보면 대를 이어 왕위를 물려주려는 욕망과 이를 수용하는 자세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 알 수 있다.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유럽에서 가장 깊은 민주주의 전통을 갖고 있는 영국은 아직도 입헌 군주국이다.
아마도 지난 200여년 동안 왕정을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고집한 나라는 미국뿐인 것 같다. 그것도 조지 워싱턴이 끝까지 왕위를 거부했기에 망정이지 손만 내밀었으면 미합중국이 왕국이 되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 봐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일부에서는 워싱턴에게 자식이 없었던 것이 미국 민주주의를 위해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고 보고 있다.
원래 전통적으로 왕정이었던 곳은 그렇다 치고 인간의 평등을 내세우며 공산주의를 한 곳은 어떤가. 구 소련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 러시아를 비롯한 공산권 대부분은 소위 노멘클라투라라 불리는 특권층과 그 자녀들이 국유 재산을 헐값으로 불하받아 대를 이어 백만장자로 살고 있다.
허울 좋은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북한이다. 조선을 일제의 착취와 탄압에서 구하겠다고 독립 운동을 하던 김일성과 그 일파가 세운 북한은 이제 3대째 김일성의 자손과 빨치산 세대의 자녀들이 똘똘 뭉쳐 과거 어떤 왕조도 누리지 못하던 절대 권력과 특권을 누리며 살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현대차 노조는 정규직 근로자 자녀가 회사에 취직을 원할 경우 특혜를 주는 안을 관철시켰다고 한다. 청년 실업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자식 취업보다 큰 특혜는 별로 없다. 직원 화장실도 전통적 수세식이 불편하다고 전부 비데로 바꾼 현대차 노조라니 그 막강한 자리를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어 하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모든 노동자의 평등과 권익 보호라는 초창기 노조 설립 취지는 어디로 갔는지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신분 대물림을 고집하는 노조에게 재벌들 부의 대물림을 비난할 자격은 과연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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