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대표하는 서양 철학자의 하나인 화이트헤드는 “서양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주석이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서양 철학에서 플라톤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플라톤 작품 중 대표작인 ‘국가론’은 철학의 깊이 있는 문제를 다루면서도 부드러운 대화체로 비유와 전설을 섞어 이야기해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읽히는 철학 서적의 하나다. 이 책에 나오는 전설 중에 ‘가이지스의 반지’라는 것이 있다.
리디아 왕국에서 목동으로 일하던 가이지스는 양떼들을 돌보다 산 속에서 지진을 당한다. 땅이 갈라지고 굴의 입구가 드러나자 호기심에 동굴 안을 탐험하던 그는 굴 안에서 거인의 시체와 그의 손가락에 있는 황금 반지를 발견한다.
황금 반지를 손가락에 끼자 그는 투명 인간으로 변한다. 투명 인간으로 변한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왕궁으로 가 왕을 죽이고 왕비를 범한 후 스스로 왕이 된 것이다. 이 전설을 들려준 글라우콘은 인간이 도덕적 행동을 하는 것은 주위의 눈이 무서워서이며 꺼릴 것이 없어진 인간의 본성은 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신비한 힘을 가진 마법의 반지가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키는가는 20세기 팬터지 문학의 금자탑 JRR 톨킨 작 ‘반지의 제왕’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톨킨의 이 작품은 ‘가이지스의 반지’에서 영감을 받아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좀 떨어지지만 영화 ‘투명 인간’(Hollow Man)에서도 약물 투여로 투명하게 된 천재 과학자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이웃집 여성을 강간하고 동료를 살해하는 것이다.
투명하게 된 인간이 산타클로스가 돼 가난한 이웃을 돕는다는 설화나 소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째서 투명하게 된 인간은 강간과 살인을 일삼는가. 여기에는 인간 뇌의 구조, 그리고 긴 진화의 역사가 얽혀 있다.
자연 상태에서 생명체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과 종족을 보전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경쟁자를 제거해야 하고 먹잇감을 잡아야 한다. 그리고는 최대한 씨를 퍼뜨려야 한다. 인간의 뇌 중 가장 원시적인 부분으로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에 ‘파충류 콤플렉스’(reptilian complex)라는 것이 있다. 공격 본능과 성적 충동을 관장하는 이 부분은 파충류 이상 뇌를 가진 고등 동물에 공통된다.
공격성이 강한 인간은 성적 충동도 강하다. 옛날부터 동양에는 ‘영웅호색’이란 말이 있었고 서양 신화에서는 군신 아레스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애인 사이다. 힘과 섹스가 불가분의 관계임을 말해준다. 왕이나 재벌 가운데 수도승처럼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사람을 본 적 있는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이다.
현직 IMF 총재이자 차기 프랑스 대통령으로 유력시 되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이 지난 주말 뉴욕에서 호텔 종업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 호텔 종업원은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으로 방을 치우러 들어갔다 벌거벗은 칸이 덤벼들어 도주했는데도 그가 강제로 호텔로 방으로 끌고 가 성폭행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무죄 여부는 확정 판결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뉴욕 경찰이 웬만한 근거 없이 이런 거물을 비행기에서 끌어내려 수감했을 리 없다. 칸은 몇 년 전에도 여성 부하직원과 관계를 맺어오다 남편이 폭로, 경고를 받은 적이 있고 그 외에도 3번이나 결혼하는 등 여성 편력이 심했던 사람이다.
여성 문제로 개망신을 당한 권력자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 스피처 전 뉴
욕 주지사, 에드워즈 전 부통령 후보 등 수없이 많다. 권력의 정상에서 누릴 것은 다 누린 이들이 어째서 한 순간의 실수로 나락에 떨어지는지 잘 이해가 안 가는 듯 하다가다 권력 의지와 성욕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또 꼭대기에 오래 서면 “감히 나를 누가” 하는 착각도 들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도덕률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