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음악 중에 ‘투란도트’(Turandot)라는 작품이 있다. 푸치니의 오페라인데 오페라로는 별로지만 음악이 참 매혹적이다. 이 오페라는 중국의 옛 전설을 다룬 작품으로, 음악이 탁월하여 푸치니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널리 공연되는 작품의 하나가 되고 있다. 내용도 이해하기 쉽고, 무대도 화려하여 오페라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쉽게 빠져들 수 있으며 ‘Nessun dorma’(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아리아가 펼치는 낭만적인 분위기도 매우 정취있다. 그러나 극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대단한 작품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다소 색다른 맛이라고나할까. 올 9월에도 SF 오페라에서는 ‘투란도트’를 2011년 시즌의 개막 작품으로 올린다. SF 오페라의 공연 일지를 살펴보면 그동안의 개막작품으로 ‘투란도트’를 능가하는 작품은 없는 실정이다. 어떤 맛이 감추어져 있길래 사람들이 그처럼 ‘투란도트’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민 초기, 샌프란시소코에 사는 것에 행운을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이곳에 차이나타운이 있다는 점이었다. 주말이면 어머니를 모시고 차이나타운에 가곤 했다. 어머니는 각종 생선이나 채소, 한약 재료를 사기 위해 그곳에 자주 들르시곤하셨는데 파킹이 복잡했던 관계로 나는 주로 차 안에서 빈둥거리며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창밖에 비쳐진 풍경은 매우 이국적이고 이방인의 쓸쓸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외로운 타향에서 그나마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동양적인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서구의 한 곳에 동양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고 또 태평양을 바라보며 고향을 그릴 수 있는 향수가 들끓었기 때문이었는지는 가끔 친구와 함께 타이나타운에 들러 중국음식을 먹는 것이 그당시 타국에서의 시름을 잊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였다. 가끔 신년이 되어 차이나타운에 들르면 북소리와 폭죽 터지는 소리… 그리고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사자춤 무리가 식당 안으로 마구 밀려들어와 더욱 중국적인 색채로 기분을 들뜨게 하곤했다. 동양(중국)은 13세기 마르코 폴로가 다녀간 뒤 비로소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마르코 폴로가 다녀갔다는 비단 길은 당시만 해도 중간 접촉지였던 돈황같은 곳이 폐허가 되어 도저히 육로로서는 갈 수 없는 길이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가 중앙 아시아 중간 지점에서 상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글로 썼다는 설이 있고 보면 아무튼 중국은 당시 서구인들에게 신비는 신비였던 것 같다. 차이나타운을 가기 위해 벤네스(Ven Ness) 거리를 지나다보면 가끔 낮 공연을 하느나 오페라 하우스 앞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을 목격하곤 했는데 알고보니 ‘투란도트’ 공연 이었다. 호기심 때문에 꼭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이 ‘투란도트’ 공연으로, 그후 몇번 봤지만 볼 때마다 여가수들이 너무 뚱뚱해서 실망이곤 하였다. 투란도트가 주는 눈부신 면모를 선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고, 노래도 그때마다 별로였다. 올해는 어떤 공연을 우리에게 선사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투란도트’는 어떤 측면에선 푸치니가 남긴 가장 엉터리 작품 중의 하나였다. 우선 내용이 사실주의 작곡가였던 푸치니의 성향과 동떨어진, 전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오페라 내용도 어설프다. 투란도트라는 여인이 실제로 존래할리 만무하려니와 수수께끼를 못 맞추면 잔혹하게 죽여버리는 그런 여인(공주)을 사랑하겠다고 무수한 남성이 목숨을 내건다는 내용은 어딘가 만화같다. 다소 역설적인 것은 이 만화같은 작품이 일단 무대에서 펼쳐지게 되면 말할 수 없는 신비한 마력으로 사람들을 매료 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사람의 느낌이나 이성을 자극하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어떤 감추어진 내면의 신비, 즉 무의식의 세계를 자극하는 작품이라고나할까… 푸치니로서는 다소 운명적이었던 이 작품을 푸치니가 살아서는 보지 못했다는 점도 아이러니컬하고 신비감을 더해 주고 있다.
‘투란도트’의 하일라이트는3막의 ‘네순 도르마’(공주는 잠못 이루고)를 부르는 장면이다. 티무르는 수수께끼를 모두 알아 맞히고도 공주(투란도트)의 사랑을 얻지 못하자 자신의 이름을 새벽까지 알아내면 목을 내놓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이 엉뚱한 제안으로 온 북경이 잠 못이루게 되고, 원작에는 없는 이 장면을 완성하느라 푸치니 무려 4년을 끌고서도 끝을 보지 못했다고한다.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그가 살았다면 어쩌면 실패작이 됐을지 모르는 ‘투란도트’는 그의 죽음으로 수수께끼처럼 푸치니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정말 수수께끼처럼 탄생한, 수수께끼같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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