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모의 재외국민 선거가 지난달 30일 실시됐다. 세계 107개국의 157개 공관에서 일제히 진행된 모의 재외선거는 워싱턴에서는 처음 치러졌다. 이번 모의선거는 내년 4월의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상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된 것이다. 첫 재외선거의 시금석이 될 모의선거를 기자가 직접 참여해 느낀 점을 살펴본다.
DC 가는길 시간 많이 걸려
한국 최종 주소지 몰라 당황
영주권자인데 단기체류자로...
<유권자 등록을 하다>
선거에 참여하는 첫 절차는 유권자 등록이었다.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으면 재외선거에 참여할 수 없다.
기자는 선거인 등록 마감일인 6월2일 오전 11시쯤 워싱턴 총영사관을 방문했다. 애난데일에서 예상시간보다 15분이 늦은 55분이나 걸렸다. 기자처럼 영사관 주소나 지리를 잘 아는 경우는 별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지리나 주소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길을 잘못 들면 한두 시간 길에서 버리는 건 각오해야 한다. 특히나 DC의 영사관 가는 길은 복잡하다.
5월17일부터 시작된 선거인 등록은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됐다. 유학생이나 주재원 등 한국에 주민등록을 갖고 있는 장기 체류자들은 국외 부재자 신고를 했다. 반면 영주권자들은 재외 선거인 등록을 해야 했다. 영주권자들은 직접 공관을 방문해 등록을 해야 하며 국외부재자 신고는 공관을 방문하거나 우편으로도 신청할 수 있어 다소 편리했다.
기자는 유권자 등록 서류를 중앙선관위의 재외선거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았다. 신청서는 밑이 조금 잘려진 상태로 출력됐다. 신청서의 종이 사이즈 규격이 한국과 미국이 달라 생긴 문제였다.
신청서는 그리 복잡하진 않았으나 우선 전부 대문자로 적을 것을 요구했다. 소문자로 적으면 식별이 어려운 문제를 염려한 조치다. 평소 잘 사용하지 않던 대문자라 기재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다. 또 기자가 마지막으로 살던 최종 주소지가 생각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그 전에 살던 주소지를 입력하니 최종 주소지가 바로 떴다.
정태희 선거관에 따르면 선거인 등록 내용은 곧바로 중앙선관위 시스템과 연결돼 정보가 입력된다. 그 와중에 영주권자이나 단기체류자로 분류되는 오류가 몇 건 발생했다 한다. 영주권을 취득했으나 거주용 여권으로 바꾸지 않은 경우 주민등록이 취소되지 않아 생긴 오류다. 실제 상당수의 영주권자들이 주민등록이 취소되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조속한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마감은 2일 오후 5시에서 연기돼 3일 오전에서야 끝났다. 다른 지역과의 시차 문제에 따른 것이란 설명이다. 선관위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1일까지 등록한 사람은 불과 10명 내외였지만 마지막 날 등록자들이 몰렸다. 저조한 등록을 우려해 ‘동원된’ 유권자들로 짐작됐다. 실제 공관 직원들이 절반 가까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외선거인(영주권자)은 17명, 국외부재자(유학생, 주재원, 장기체류자)는 44명으로 확실히 영주권자들의 참여가 저조했다.
<투표용지 받다>
6월17일 집에 국제특급우편(EMS)으로 투표용지가 배달돼 왔다. 매거진 사이즈의 발송용 봉투 속에는 회송용 일반 봉투와 투표용지가 들어 있었다. 기자의 최종 주소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낸 투표용지다. 한국의 투표용지를 손에 드니 기분이 묘했다. 정말 투표를 하게 되는구나 하는 기분도 들었다.
우편물은 우체부가 우편함에 넣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사람에 전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가정에 아무도 없을 때는 투표용지를 받을 수 없는 문제점이 예견됐다.
정태희 선거관도 “본인 부재시 우편물을 못 받은 사례가 몇 건 발생했다”며 “나라마다 상황이 다른 만큼 우편물 전달방법의 개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투표하다>
드디어 30일. 투표는 워싱턴 총영사관 민원실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됐다.
오후 2시. 영사관을 찾아 먼저 선관위가 보내준 투표용지를 제출하니 여권이나 신분증을 요구했다. 본인 확인을 위해서다.
다음 투표용지를 들고 바로 옆의 기표소로 옮겼다. 기자가 한국에 살던 시절과 선거제도가 달라져 있었다. 영주권자들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선거에만 참여할 수 있다. 그런데 비례대표 선거라는 게 다름 아닌 지지 정당을 선택하는 거였다. 선거제도가 자주 바뀐 만큼 사전 충분한 홍보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기표 방식도 한국과는 크게 달랐다. 붓 뚜껑으로 지지 후보나 정당에 찍는 게 아니다. 직접 펜으로 지지 정당 이름이나 주어진 기호를 투표용지의 정해진 공란에 쓰는 자서식(自書式) 방식이다. 연세 드신 분들이 혼동하기 쉬울 것 같다.
기표를 한 후 투표용지를 회송용 봉투에 넣어 봉했다. 이어 투표함으로 옮겨 봉투를 넣은 것으로 투표절차는 끝났다.
이번 투표에는 유권자 등록을 마친 총 61명 중 절반이 조금 넘는 32명이 참여했다. 투표율이 52%이나 별 의미 없는 숫자다. 선거인 수가 제한된 상황에서 치러진 것인데다 실제 투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적극적인 투표의사가 있는 유권자들이 선거인등록을 했음에도 절반밖에 참여하지 않았음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막상 진짜 선거에서 저조한 투표율을 충분히 예상케 하는 것이다.
투표 장소문제도 드러났다. 영사관은 주차 공간은 물론 투표 공간도 너무 협소했다. 주차장은 직원용 외에 약 10대 가량이 주차할 수 있으며 투표 공간도 수십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 수용 불가한 상태였다.
정태희 선거관도 “하루에 3천명이 투표가능한데 6일간 투표를 해도 1만8천명밖에 수용할 수 없다”며 “보다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라고 동감했다.
정 선거관은 “워싱턴 영사관에서는 공간적 제약 때문에 투표가 힘들고 주차장과 장소, 접근성 등을 감안해 대체 투표소를 찾아보는 중”이라며 “버지니아 비엔나 소재 한미과학협력센터가 무난할 것 같다”고 말했다.
모의선거에서 느낀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충분히 예상되는 낮은 투표율을 높이는 거였다. 현행 선거법대로라면 영주권자의 경우 총선 때 두 번, 대선 때 두 번 등 내년에 모두 4차례 공관(투표소)을 방문해야 한다. 그럴 여유 있는 한인들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이다.
부정선거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유권자 등록을 직접 하게 해 본인확인을 해야 한다지만 최소한 등록은 우편으로 하고 투표는 직접 방문해 하는 차선책이라도 강구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는 대다수 한인 유권자들이 한국 선거정보에 생소하다는 점이다. 사전 충분한 선거제도 및 절차에 대한 홍보가 필요하다는 점을 절실히 느꼈다. 내년 첫 선거는 11월13일부터 선거인 등록이 시작되는 만큼 불과 4개여월을 남겨두고 있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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