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세대의 주역이었던 집안 어르신이 최근 세상을 떠나셨다. 황망하게 상을 치르면서도 장례 방식이 많이 다양해졌음을 실감했다. 화장 후 유골 처리와 관련한 ‘진공’ 유골함과 ‘생분해성’ 유골함의 공존이 특히 그랬다. 유골의 반영구적 보관을 위해 공기를 빼고 질소를 충전하는 방식과, 수목장을 통해 최대한 이른 시간에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영구 보존’과 ‘신속한 소멸’이라는 극단적으로 다른 결과를 추구하지만, 고인을 배려하는 마음만은 두 방식 모두에서 느껴졌다.
■마음은 같아도, 외양의 행동은 완전히 다른 경우가 있다. 당장 불가리아 고갯짓이 생각난다. ‘긍정’ 의사를 전할 때 불가리아 사람들은 고개를 좌우로 젓고, 위아래로 끄덕여 ‘거절’ 혹은 ‘부정’의 의사를 전달한다. 겉으로 보이는 조건과 실질적 결과가 정반대로 작용한 역설도 지구촌 곳곳에서 확인된다. 베네수엘라, 나이지리아 등이 ‘자원의 저주’로 개발이 지체된 반면, 싱가포르와 네덜란드 등은 열악한 여건이 발전의 촉매제가 됐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도 그랬다. 1970년대엔 세계 3위(351명/㎢)의 높은 인구밀도가 약점이었지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는 케이블 하나로 초고속인터넷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했다. 온 나라가 망할 것 같았던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경제 구조조정을 이끈 ‘위장된 축복’이었고,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주요 20개국’(G20)을 통해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는 발판을 제공했다.
■돌아가신 어르신이 활약하던 산업화 시기, 우리 사회는 역동적이었다. 지위와 직업은 달라도 서로의 고단함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설 귀성은 1990년까지만 해도 도시 근로자들의 자신감 충전 기회였다. 고향의 따뜻한 환대와 죽마고우와의 상봉은 ‘꺾이지 않는 마음’의 원천이었다. 그랬던 설 연휴가 이제는 갈등의 시기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민의 34.5%는 명절에 다툰 경험이 있고, 가정폭력 신고도 40% 늘어난다고 한다. 이번만큼은 다름의 역설을 믿고 서먹했던 이들부터 격려하고 보듬는 용기를 내보면 어떨까.
<조철환 / 한국일보 오피니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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