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1787년 여름 13개 주 대표들은 11년 전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던 필라델피아에 다시 모였다. 새로운 국가 형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식민지 시절 중앙 정부의 횡포에 신물이 난 이들은 독립 전쟁 승리 후 모든 일을 13개 주의 합의에 의해서만 처리하도록 했다. 세금을 걷는 문제나 군대를 일으키는 문제도 모든 주의 자발적인 협조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그러나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주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는 것은 어려웠다. 이런 와중에 1787년 초 셰이의 반란이 터졌다. 독립전쟁에 참가했던 대니얼 셰이는 불경기로 빚을 지게 되자 비슷한 처지에 놓인 매사추세츠의 농부들을 선동해 빚을 탕감해달라며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 반란은 결국 진압되기는 했지만 이런 일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날 때 중앙 정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독립전쟁에서 패한 후 다시 미 대륙 진출을 노리고 있는 영국이나 다른 유럽 열강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강한 정부는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 사항이었다.
새 헌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폭넓은 공감대가 마련됐고 대체적인 골격도 잡혔으나 최종 합의를 가로 막는 걸림돌이 있었다. 큰 주와 작은 주의 세력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결정하는 대의원 수의 문제였다. 뉴욕과 버지니아 등 인구가 많은 주는 당연히 인구 비례로 하자고 나왔고 로드아일랜드 등 작은 주는 인구에 상관없이 한 주 한 표제를 해야 한다고 우겼다.
한동안 이로 인해 좌초 위기에 몰렸던 헌법 제정 작업은 의회를 둘로 나눠 하나는 인구 비율로, 하나는 주 수대로 하자는 타협안이 나오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현 연방 의회가 인구에 관계없이 주 당 2명의 의원을 갖는 상원과 인구 비례에 의한 하원으로 나눠진 것은 대타협의 결과다. 이 때 타협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면 연방 헌법도 없었고 지금의 미국도 없었다.
새 헌법에 의해 미합중국이 세워진 후에도 두 파가 첨예한 대립을 보인 이슈는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독립 전쟁을 치르며 발생한 엄청난 액수의 부채를 누가 부담하느냐와 새 나라의 수도를 어디로 하느냐였다. 이미 빚을 갚아버린 버지니아 출신으로 미 창업자의 하나인 제퍼슨은 주 정부의 빚을 연방 정부가 떠안는 것을 강력 반대했고 역시 창업자의 하나로 강한 정부 신봉자인 해밀턴은 이를 적극 찬성했다.
반면 수도 문제에 관해서 제퍼슨은 버지니아 인근으로 옮기기를 희망한 반면 뉴욕 출신인 해밀턴은 뉴욕에 계속 남기를 원했다. 양파의 한치 양보 없는 대립으로 국론이 분열될 위기를 맞자 두 사람은 1790년 어느 날 조용히 만나 저녁을 먹으며 대타협을 이루는데 성공한다. 미국 수도는 버지니아 인근으로 옮기되 주정부의 부채는 연방 정부가 떠맡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 미국의 수도가 버지니아 인근 포토맥 강변의 워싱턴 DC로 정해지게 된 이유다.
모든 정치가 다 그렇지만 특히 민주주의 하에서는 문제 해결에 타협 말고는 대안이 없다.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 당사자가 자기 주장만 옳다고 고집만 부리다 보면 파국밖에는 결말이 없다. 미국이 200년 동안 민주주의를 하며 세계 최강의 국가로 발전한 것은 건국 초기부터 이런 타협의 전통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주 오는 8월 2일로 시한이 다가온 국채 상한선 조정과 관련, 세금을 올리는 대가로 소셜 시큐리티와 메디케어 등 사회 복지 개혁을 수용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미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원래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0년간의 전쟁으로 궤멸 상태에 빠진 알 카에다가 아니라 통제불능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사회복지 예산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미국의 장래는 없다. 만에 하나 민주 공화 양당이 타협에 실패, 국가 채무 상한이 조정되지 않으면 미국의 신용은 추락하고 제2의 불황이 오는 것은 불가피하다.
두 당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이 귀한 찬스를 놓치지 않기 바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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